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관방장관이 14일 집권 자민당 총재에 선출됐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다 잇따른 스캔들로 지지율이 급락하자 지병을 구실로 사임한 아베 신조 총리의 바통을 스가가 이어받은 것이다. 16일 참의원·중의원 양원의 총리 지명 절차를 거쳐 '스가 내각'이 출범하면 경색된 한·일 관계도 조금의 변화가 예상된다.
하지만 7년 넘게 아베 총리 관저의 수문장이었던 그가 '포스트 아베'로 낙점된 사실을 상기할 때 자민당 독주 체제와 일본 정치판의 속성에는 조금도 변화의 조짐이 없다는 점에서 일찌감치 한·일 관계의 거친 풍향을 감지할 수 있다. 스가는 2012년 12월, 집권 2기를 시작한 아베 신조 내각 7년 8개월 내내 관방장관직을 지키다 기시다(岸田)·이시바(石破) 등 경쟁자들을 따돌리고 총리 자리를 꿰찼다. 관방장관으로서 '일본의 입' '아베의 입' 역할을 해 온 그는 내각 브리핑을 통해 한국에도 널리 얼굴이 알려졌고, "안중근은 테러리스트" 등 막말로 우리 국민의 분노를 산 인물이기도 하다.
이런 그의 역사적 관점이나 한국에 대한 시각을 감안하면 아베에서 스가로 릴레이된 일본 정치판의 얼굴 바꾸기는 중국 전통극 '변검'(變臉)과 쌍둥이처럼 빼닮았다. 속(연기자)은 그대로인데 겉(얼굴)만 바뀐 것이다. 변검은 연기자의 얼굴 표정이 순식간에 바뀌는 가면극이다.
지난 2006년 9월부터 11개월간 짧은 집권에 이어 2012년 다시 총리직에 올라 역대 최장수 총리 타이틀을 거머쥔 아베는 이제 막후의 실력자로 변신한다. '바지 사장' 스가 총리의 뒷배로 수렴청정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그동안 '아베의 후임은 아베'라는 소리가 줄곧 자민당 내부에서 나돌았다. 상반기까지만 해도 여론 등 분위기도 아베의 연투를 기정사실화했다. 아베 뒤를 이을 재목을 찾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그런데 코로나가 흐름을 바꾸었다. 코로나 변수가 돌출하면서 아베의 행보는 뒤죽박죽이 됐다. 힘으로 꾹꾹 눌러왔던 자신의 스캔들 위에 측근 정치인 스캔들이 덮치고 코로나 대응 과정에서 '무능'이라는 꼬리표가 붙으면서 임기를 1년 앞두고 중도 퇴진의 처지에 내몰린 것이다. 더 버티기 힘들자 억지로 모양새를 갖추기 위해 지병을 핑계 삼아 '페이스 리프트'(Facelift) 계획을 감행한 것이다.
하지만 총리가 바뀌어도 '어차피 아베 3기'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앞으로도 일본 정치판의 개혁과 개전은 기대하기 힘들다. 스가 또한 "일·한 관계의 기본은 1965년 체결된 청구권협정"이라는 속내를 숨기지 않는다. 이는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모든 문제가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됐기 때문에 위안부 문제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등 한국과의 현안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아베 정권의 모든 정책을 계승하겠다"고 선언한 스가에게서 뭘 더 기대하겠는가.
가면은 계속 바꿔치기 할 수 있다. 하지만 더 바꿀 가면이 없는 상황에 이르면 무엇이 남을까. 맨얼굴뿐이다. '전후 체제로부터 탈각(脫却)'이라는 깃발을 들고는 양국 관계를 벼랑 끝으로 몰아간 아베와 일본 극우세력이 아무리 요란하게 변검술을 부려도 진실은 변하지 않는다. 맨얼굴은 드러나게 되어 있고, '다테마에'(建前)로는 진실을 계속 가릴 수도 없다. 과거사에 대한 일본 정부와 국민들의 진정성 있는 사과와 반성이야말로 한·일 관계의 기본이자 기초다. 일본에 줄 게 많지 않고 주고 싶은 마음도 없지만 스가 총리의 취임에 맞춰 한국민이 주는 충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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