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년 4월 우리 집에서는 세 아이(8세, 5세, 4세)가 한꺼번에 홍역을 하더란다. "당시 5살짜리 큰 딸(나에게는 큰 언니)은 그때 세상을 떠나 산에 묻고 오니, 작은 아들도 또 보낼 것 같더니 억지로 살더라네!"라고 어머니는 나에게 전하셨다. 8살짜리인 큰 오빠는 홍역 끝에 백일해를 얻어서 32년 동안 수차례 삶의 고비를 넘기시다가 결국 50년 전(1970년 7월 마지막 날)에 세상을 떠나셨다.
큰 오빠 김동수(1939.2.19 生)는 병약한 거 빼고는 183cm의 훤칠한 키, 멋진 미남이셨다. 잦은 학교 결석에도 공부를 너무나 잘하셨기에 경북대 사대부 중, 고를 졸업하신 후, 원하던 경북대 물리학과에 수석으로 입학하셨으나, 건강 때문에 결국 대학 1학년을 다니시다가 중퇴하셨다.
입, 퇴원을 수없이 하다가 큰오빠 때문에 1960년 5월에 그 당시 공기 좋다는 범어동에 집을 지어서 이사까지 했다. 세상 떠나실 때까지 범어성당에서 교리 교사, 청년회, 성가대, 성당 안의 전기 기사로 봉사하셨다. 또 손재주가 좋으셔서 무엇이든지 척척 고쳐 내셨다.
아프신 중에도 기술학원에 다니시며 전파관리사 자격증을 따셨으며, 교동시장에서 재료를 사 와서는 그 당시 귀한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뚝딱 만드셨다.
노래도 너무나 잘 부르셨으며, 특히 가톨릭 성가 151번("주여 임하소서")을 울 작은언니와 듀엣으로 종종 부르셨다. 큰 오빠는 1969년 6월 26일~29일에는 왜관 성베네딕도 수도원 피정의 집에서 대구대교구 제1차 꾸르실료를 수료 하셨다.
1970년 7월 마지막 날 적십자 병원에서 장티푸스 진단을 받고는 법정 전염병이라고 대구 시립병원(現대구 의료원)으로 옮기는 택시 안에서 "어머니, 집에 가요!"라고 자꾸 조르더라네! 그때는 그 병원 가면 다 죽어서 나온다는 속설이 있었다.
어머니께서는 할 수 없이 택시를 돌려 집으로 가시는 중에, 어머니 무릎을 베고 숨을 거두셨다. 어머니께서는 택시 운전사가 내리라 할까 봐 겁이 나셔서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참으시면서 숨도 못 쉬시다가 집에 오셔서는 대성통곡하셨단다. 나는 어머니 연락을 받고 그 당시 근무하던 남구청에서 조퇴하여 버스를 타고 집으로 오는 중이었다.
그날 새벽에 어머니께서 고열로 밤새 신음 중이시던 큰 오빠 방에 들어갔더니, "오늘이 마지막 날이네요." 하셨다. 이에 "그게 무슨 말이니?" 묻자 큰 오빠는 "아니, 오늘이 7월 마지막 날이라고요"라고 말을 돌리셨단다. 지나고보니 떠나는 마지막 날을 미리 아셨던 듯하다.
지난 여름, 큰 오빠 50주기를 맞아 작은 오빠 부부, 언니와 함께 평리성당에서 기일 연미사 참례를 하고는 함께 위령기도를 바쳤다. 무더위가 한창인 때라서 산소(범물 천주교 묘원)에 갈 수 없는게 너무나 아쉬웠다.
5살에 떠나보낸 큰 딸, 62세로 세상 떠나신 우리 아버지, 32살에 떠나보낸 큰 아들 모두의 명을 다 이으시는 듯 어머니는 96세까지 한 많은 인생을 건강하고 깨끗하게 사시다가 세상을 떠나셨다. 어머니의 기일인 4월 25일에 부모님 산소에 갔다가 큰 오빠 산소에 들렸더니, 우리들을 반기는 듯 영산홍이 만발해 있어 마음이 포근해졌다.
보고 싶은 큰오빠(김동수)의 여동생(김혜란)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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