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국내 로맨스스캠 피해액이 1360억원으로 1년 만에 두 배 넘게 불어났다. 경찰청이 지난 2월 집계한 2024~2025년 로맨스스캠 접수 현황에서다. 피해가 폭증한 자리에는 목소리와 문자만이 아니라 영상통화 속 얼굴까지 실시간으로 합성하는 딥페이크가 있다. 얼굴을 확인했다는 사실이 더는 신원 확인이 되지 못하는 구간에 들어섰다.
◆ 피해액 675억→1360억, 건수는 1265건→2192건
같은 자료를 보면 2025년 접수 건수는 2192건으로 2024년 1265건보다 73.3% 늘었다. 피해액은 675억원에서 1360억원으로 2.01배가 됐다. 건수보다 금액이 더 빠르게 불어났다는 것은 한 사람이 잃는 돈이 커졌다는 뜻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송석준 의원실이 지난해 10월 경찰청에서 받은 국정감사 자료로는, 통계 집계가 시작된 뒤 1년 반 동안 2428건이 발생해 1인당 평균 피해액이 5600여만원에 이르렀다. 같은 자료에서 2024년 2~7월 502억원이던 피해액은 2025년 같은 기간 654억원으로 30.2% 늘었다.
월별로는 2025년 9월 한 달 피해가 153억원으로 연중 가장 많았다. 신고 건수는 208건이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집계로 2026년 5월 피해액은 72억원으로 1분기 월평균 75억원보다 4% 줄어, 증가세는 다소 꺾였다.
◆ '박가인' 34세 여성, 10~15일치 각본까지 만들어 뒀다
울산경찰청은 지난해 4월 딥페이크로 만든 가상 여성을 앞세워 120억원을 가로챈 조직원 45명을 검거했다고 밝혔다. 주범 등 10명은 구속됐다. 일당은 SNS에 올라온 일반인 사진을 합성해 34세 여성 '박가인'이라는 가상 인물을 만들고, 실제 영상통화에 그 얼굴을 씌웠다.
피해자는 1년간 100명가량이었다. 1인당 피해액은 최소 200만원에서 최대 8억8000만원, 평균은 1억원을 넘었다. 조직은 10~15일 분량의 시나리오를 미리 짜 두고 그 각본대로 대화를 이어간 뒤 투자를 권유했다. 울산경찰청 수사팀은 브리핑에서 "박가인에 대한 프로필과 이런 걸 다 숙지를 하고 10일 동안 박가인이 행동하는 행동 패턴도 다 시나리오에 따라 움직인다"고 설명했다.
같은 수법은 국경을 넘는다. 홍콩 경찰은 2024년 10월 딥페이크 영상통화로 626억원을 뜯어낸 일당 20여 명을 체포했다. 대만·싱가포르 등지의 남성이 표적이었다. 국가정보원은 지난해 10월 국회 정보위원회 비공개 보고에서 캄보디아 스캠 조직에 가담한 한국인이 최대 2000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 검거율 12.7%… 총책은 해외, 돈은 코인으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한병도 의원실이 지난해 10월 경찰청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2024년 로맨스스캠 검거율은 12.7%에 그쳤다. 2025년 1~9월에도 46.9%로 절반을 넘지 못했다. 총책과 서버가 동남아에 있고 피해금이 가상자산과 상품권으로 즉시 세탁되는 구조 탓이다.
제도는 뒤늦게 따라붙는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5월 업무방법서를 고쳐 로맨스스캠 같은 신종 사기도 경찰 확인이 있으면 금융사가 즉시 계좌를 지급정지하도록 했다. 가상자산거래소에 사기이용계정 지급정지와 피해구제 의무를 부과한 통신사기피해환급법은 3월 국회를 통과해 10월 1일 시행된다. 피해자산 환급 범위를 금전에서 가상자산까지 넓히는 시행령 개정안도 지난 7월 입법예고됐다.
◆ 얼굴 가려보라는 감별법도 흔들린다
수사 기술은 갖춰지고 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2024년 3월 영상 진위를 5~10분 만에 가리는 탐지 소프트웨어를 내놨다. 탐지율은 80%, 학습 데이터는 520만점이다. 행정안전부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231만건을 학습한 AI 딥페이크 분석모델을 수사 감정에 투입했다.
한계도 분명하다. 현행 통신사기피해환급법은 재화·용역 거래를 가장한 사기를 제외해, 수사기관 확인 전에 금융사가 스스로 계좌를 묶기 어렵다. 이 공백을 메우려는 개정안은 지난해 12월 발의된 뒤 국회에 계류돼 있다. 보안업계와 컴퓨터비전 연구진 사이에서는 실시간 필터의 생성 속도가 빨라지면서 고전적 육안 감별법마저 힘을 잃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래도 당장 쓸 방법은 남아 있다. 한 영상학부 관계자는 2024년 한 방송에서 "영상 통화로 돈을 빌려달라거나 투자를 유도할 때 상대방이 딥페이크인지 아닌지 의심된다면 손으로 얼굴을 가려보게 하거나 얼굴을 좌우로 빠르게 돌려보도록 요구해야 합니다"라며 "실시간 렌더링 과정에서 경계선 왜곡이나 부자연스러운 잔상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라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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