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에는 시대를 뛰어넘어 정치 관료를 부끄럽게 만드는 우화가 실려 있다.
"어떤 사람이 날마다 이웃집의 닭을 한 마리씩 훔쳤는데, 어떤 이가 '그런 짓은 군자의 도리가 아니다.'라고 따졌다. 그러자 도둑은 '닭을 훔쳐 먹는 횟수를 줄여 한 달에 한 마리씩만 훔치다가, 내년이 되면 완전히 그만두겠다.'라고 대꾸하였다."
악행인 줄 알면서도 '점진적 중단'이라는 기만책을 내놓은 도둑을 향해 맹자는 "옳지 않은 줄 알았다면 속히 그만둘 일이지, 어찌 내년까지 기다린단 말인가?"라고 질타하였다.
맹자가 이 비유로 겨눈 과녁은 백성의 삶을 옥죄는 세금 제도가 잘못된 줄 알면서도 "국정 형편상 당장은 어렵고, 점차 세율을 낮추다가 내년에 폐지하겠다."라며 핑계 대던 당시의 통치자였다. 맹자는 국가 권력이 오류로 판명 난 제도를 고치지 않고 미루는 행위를 '공권력이라는 외피를 두른 제도적 약탈'과 하등 다를 바 없다고 보았다. 통치 행위의 오류를 방치하는 일과 이웃의 재산을 훔치는 절도 사이의 본질적 유사성을 짚어낸 것이다.
현대 행정 국가의 정책은 선한 의도와 가치 있는 명분을 표방하기에, 정의·형평·안정·복지와 같은 숭고한 가치가 법안의 서두에 놓인다. 그러나 복잡다단한 현실의 변수 속에서 모든 정책이 설계자의 의도대로 작동하지는 않는다.
진짜 문제는 그 오류가 명백히 드러난 이후에 벌어진다. 정책 실패의 징후가 확인되었을 때, 통치 기구가 취하는 태도는 닭 도둑과 기묘하게 닮아있다.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즉각 방향을 선회하기보다는 "정책의 취지는 옳았다", "제도 안착 과정에서 겪는 일시적 진통이다"라는 궤변을 앞세운다. 닭을 훔친 사실 자체를 부정할 수 없는 지경이 되면, 이번에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연착륙"이나 "단계적 보완"이라는 점진론을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 든다.
그러나 이미 방향이 어긋난 정책의 점진적 개선이란, 정책 당국자의 정치적 부담과 체면을 지키기 위해 국민에게 피해를 '달력을 넘겨 가며 쪼개어 지불하게 하는 것'에 불과하다. 한 달에 한 번으로 줄인 닭 절도는 '자비로운 배려'처럼 보일지 모르나, 여전히 매달 닭을 잃어야 하는 이웃에게는 지속적인 침탈일 뿐이다. 명백한 실정을 인지하고도 정치적 부담과 무오류의 체면 때문에 철회를 망설이는 것은 공직 윤리의 근본인 '염치'의 상실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 우화의 또 다른 주체에 주목해야 하니, 도둑을 질타한 '어떤 이'이다. 만약 어떤 이의 준엄한 문제 제기가 없었다면, 도둑은 닭을 훔치는 행위에 문제의식을 느끼지도 않았을 것이고, 도둑질을 줄이겠다는 시늉조차 안 했을 것이다.
현대 민주주의 체제에서 '어떤 이'의 역할은 바로 주권자인 '국민'에게 주어진다. 국정 시스템이 스스로 무오류의 환상에서 벗어나 과오를 바로잡기만 마냥 기다릴 수 없다. 관료제와 권력은 본능적으로 관성을 유지하려 하고, 실패를 가리려 드는 생리를 지녔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정책의 오류를 먼저 감지하고 "지금 당장 멈추라!"라고 단호히 요구할 수 있는 감시자의 존재가 필수적이다.
성숙한 국민의 책무는 주기적인 투표로 권력을 위임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권력이 내놓는 그럴듯한 명분 뒤에 숨은 실질적 폐해를 예리하게 관찰하고, '점진적 보완'이라는 이름의 유예가 권력자의 시간 끌기인지 따져 물어야 한다. 행정과 정치가 무오류의 신화에서 벗어나 잘못을 인정하는 염치를 갖추게 만드는 동력은 공론장에서 울려 퍼지는 시민 사회의 깨어 있는 목소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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