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 부부에게 8년간 가스라이팅(심리적 지배)을 당해 회삿돈 65억8700만원을 횡령한 생활가전업체 전직 대표가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감형됐다.
서울고법 형사4-1부(김인겸·성지용·전지원 부장판사)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혐의로 기소된 생활가전업체 전 대표 A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한 1심을 깨고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A씨는 2019년 1월부터 2020년 4월까지 전 아내의 지인 부부로부터 심리적 지배를 받아 자신이 대표로 있던 회사 자금 약 66억원을 횡령하도록 유도당했다. 지인 부부는 가상의 무속인 '조말례'를 내세워 "제단에 바칠 돈이 필요하니 회사에서 돈을 가져오라"고 A씨에게 지시했다.
수사 결과 무속인 조말례는 지인 부부 중 장모씨가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로 드러났다. 실제로는 장씨가 무속인 행세를 하며 꾸며낸 자작극이었다. A씨는 이사회 승인 없이 회사 자금을 자신의 계좌로 옮긴 뒤 장씨 또는 심씨에게 송금한 것으로 조사됐다.
재판부는 A씨가 8년 동안 지인 부부에게 심리적으로 철저히 지배당한 점을 양형에 고려했다고 밝혔다. A씨가 법정에서 잘못을 인정하며 반성하고, 형사 처벌 전력이 없었던 점도 참작됐다.
재판부는 또 "A씨는 가스라이팅을 당했다는 사실을 인지한 이후 범행을 인정하는 반성문을 여러 차례 작성했다"며 "자신이 보유한 피해 회사 주식을 대물변제하는 방식으로 피해를 보전했고, 피해 회사도 A씨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했다"고 설명했다.
1심 재판부는 "가상 무속인을 내세워 피해자를 심리적으로 지배하고 66억원 상당의 회사 자금을 횡령하도록 했다"며 "범행 경위와 수단 등 죄질이 좋지 않고 비난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항소심은 이러한 죄질에도 불구하고 가스라이팅 피해 경위를 적극 반영해 형을 낮췄다.
A씨를 가스라이팅한 지인 부부 장모씨와 심모씨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각각 징역 8년을 선고받았다. 이들은 피해자를 상대로 성적 동영상을 촬영하게 한 뒤 배포하거나 자녀에게 위해를 가하겠다고 협박하는 등의 수법으로 40회에 걸쳐 약 87억원을 뜯어낸 혐의도 받고 있다.
사기·공갈 등 혐의에 대한 별도 재판에서 서울남부지법은 장씨에게 징역 20년을, 심씨에게 징역 17년을 각각 선고했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판결이 가스라이팅 피해자를 양형에서 어느 수준까지 고려할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다만 횡령 피해를 입은 회사 측 주주와 채권자 등 이해관계자들의 피해 회복 여부는 여전히 미확인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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