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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영의 예술기행] 중국 황허(黃河) 유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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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영 시인

황허 모자상. 박순국 전 경일대 교수 제공
황허 모자상. 박순국 전 경일대 교수 제공

◆인생은 고해(苦海), 그럼에도 삶은 계속된다.

TV에서 히말라야 짐꾼 모자(母子)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본 적 있다. 이마에 짐끈을 묶고 제 몸무게보다 더 나갈 등짐을 진 그들의 곤고함이 TV 밖으로 고스란히 전해진다. 열세 살 아들과 히말라야 짐꾼 대열에 합류한 늙은 어머니는 남편이 동상으로 발가락을 잃자 대신 따라나선 어린 아들이 안쓰럽기만 하다.

하지만 짐꾼 무리에서 힘이 부친 아들의 걸음은 자꾸 뒤처질밖에. 그러니 늙은 어머니마저 아들을 챙기다가 진이 빠져 무리에서 뒤처져 버리고… 급기야 짐꾼 무리에 폐를 끼치게 된 아들이 소리 내 울부짖으며 짐짓 어머니를 앞질러 그 가파른 산길을 뛰어가 버린다.

황망해하는 늙은 어머니의 눈빛과 험한 발에 걸친 낡은 슬리퍼, 그리고 깨져 검어진 발톱들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어린 아들의 이름이 '소남'이었는데, 최근 일어난 비극적인 네팔의 홍수에 부디 휩쓸리지 않았기를.

란저우(蘭州)에서 황허(黃河)를 건널 때, 짙은 누런색의 거친 강물 위 쪽배에도 소남과 같은 뱃사공이 있었다. 아버지를 따라나선 듯한 소년의 얼굴은 검게 그을려 있었고, 노를 잡은 손등에도 오랜 노동의 흔적이 더께로 앉은 듯 누랬다. 칭짱고원 자링호의 푸른 물에서 발원한 황허는 쇄설물인 실트(silt)로 누렇게 변해 란저우에선 급물살로 선객들을 위협해 댔다.

그 물굽이에 대항해 뱃사공 부자(父子)는 안간힘을 다해 노로 강바닥을 밀어 대고 있었다. 침적된 마사와 침니의 색깔과 구분이 안 되는 셔츠 밖으로 드러난 소년의 팔이 자꾸 안쓰러워 나는 짐짓 배 밖으로 손을 내밀어 황허 물을 움켜쥐었다.

황허 삼협댑. 박순국 전 경일대 교수 제공
황허 삼협댑. 박순국 전 경일대 교수 제공

◆란저우(蘭州)에서 장예(張掖)까지

황허는 약 5,464㎞ 길이로 중국에서 창장(長江·양쯔강) 다음으로 긴 강으로, 칭하이성(靑海省)에서 간쑤성(甘肅省), 닝샤후이족(寧夏回族) 자치구, 네이멍구(內蒙古) 자치구를 지나 산시성(陝西省), 산시성(山西省), 허난성(河南省), 산둥성(山東省)으로 돌아 나간다. 강 유역에는 란저우(蘭州), 바오터우(包頭), 시안(西安), 타이위안(太原), 뤄양(洛陽), 정저우(鄭州), 카이펑(開封), 지난(濟南) 등의 도시가 발달했다. 유역 면적은 74만5천㎢이다. 신석기 시대 앙소(仰韶)부터 룽산(龍山) 문화, 하(夏), 상(商), 주(周)로 이어지는 고대 중국 문명은 거의 모두 황허 유역에서 시작되고 성장·발전하면서 명멸해 갔다.

란저우는 간쑤성의 성도로 시안(西安)에서 400㎞쯤 거리였다. 이미 시안의 성벽과 진시황릉 병마용갱을 보며 대륙의 크기와 그 스케일에 기가 조금 질려 있던 나는 처음 타 본 중국 야간열차에서의 불편과 그로 인한 피로로 도시의 풍광과 천하일미라는 우육면에도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그저 건성으로 바이타산의 백탑과 넓은 황허를 가로지르는 황허제일교라 불리는 중산교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넓디넓은 간쑤성박물관에서 날아가는 새의 등을 밟고 질주하는 동분마(銅奔馬) 앞에서 중국의 과장법에 홀린 듯 오래 서 있었다. 1969년 우웨이(武威)의 레이타이(雷臺) 동한시대 무덤에서 발굴되었다는데, 홀린 나는 며칠 후 둔황에서 이 말 조각상을 열 마리나 사게 된다.

황허에서는 하·상·주 고대 왕국을 지나 진시황, 동탁, 초패왕 항우, 한고조 유방, 우희, 여태후, 정강의 변까지 수많은 중국의 역사를 생각해 보게 된다. 예나 제나 거대하고 폭력적인 이웃나라 탓에 우리 조상들이 겪은 수난사도 자연스럽게 떠올리며 황허 모자상을 일별하고 앞의 쪽배를 타고 병령사석굴(炳靈寺石窟)로 향한다. 강수량이 적은 탓에 유가협(刘家峡) 댐을 둘러싼 병령석림(炳灵石林)으로 불리는 기암절벽이 그야말로 중국 산수화의 기원을 보여 주는 듯하다.

티베트어 음역으로 '십만 개의 불상(炳靈)'이라는 뜻답게 당(唐) 측천무후의 얼굴을 하고 있다는 27m 대형 미륵보살을 중심으로 절벽을 따라 총 183개 석굴에 694개의 석상과 82개의 소조상이 길게 조성돼 있다. 석굴에는 912㎡의 벽화가 있다고 하나 공사 중이어서 자세히 살펴보진 못했다.

치차이산 색상. 박순국 전 경일대 교수 제공
치차이산 색상. 박순국 전 경일대 교수 제공

◆마치 외계(外界)를 보는 듯한 치차이산(七彩山)

하서주랑(河西走廊, 황허 서쪽의 좁고 긴 평지, 란저우와 하서사군(河西四郡)으로 불리는 우웨이(武威), 장예(張掖), 주천(酒泉), 돈황(敦煌)을 포괄)은 고대 실크로드이자 동아시아와 신장(新疆) 위구르를 통한 서방 세계와의 정치·경제·문화 교류의 중요 국제 통로였다. 혜초 스님의 길을 따라 나선 실크로드 여행에서 마치 휴게시간처럼 즐기며 다녔던 곳은 우웨이(武威), 장예(張掖) 구간이었다.

무협지에 나올 법한 이름을 가진 음마대협곡을 지나며 일행들과 금강불괴신공이라든지 구양신공, 북두신공, 소요유 등의 시공을 초월하는 무협지의 각종 심법이나 무공들을 읊으며 강호의 협객들처럼 떠들썩하니 걸어 다녔다. 음마대협곡은 그야말로 주름진 석벽 한쪽에서 누군가 손을 뻗어 장풍이라도 시전할 듯한 협곡이었다.

장예의 치차이산(七彩山)은 200만 년 동안 붉은 사력암질이 풍화와 침식, 퇴적 작용을 거치면서 합쳐지고 융화되어 형성된 산봉우리와 험준한 기암괴석들로 이루어진 단하지모(丹霞地貌)였다. 나무 한 그루 없는 민둥산이 색동저고리나 무지개떡처럼 황토색, 연두색, 흰색, 갈색, 고동색 단층을 이뤄 마치 외계(外界)를 보는 듯했다.

동서 길이 40㎞ 일대에 분포하는 총면적 300㎢에 달하는 산맥인데, 더군다나 20세기 초에 발견되었다고 한다. '우리 러시아도 중국처럼 쬐끄만했으면 좋겠어요'라던 러시아 사람들의 농담이 문득 떠올랐다. 이런 믿을 수 없는 풍광을 대하니 중국인들의 과장법도 무리가 아니란 우스운 생각마저 들었다.

황허 란저우시. 박순국 전 경일대 교수 제공
황허 란저우시. 박순국 전 경일대 교수 제공

◆강이 품고 흐르는 사랑과 슬픔의 역사들

중국인들은 창장(양쯔강)을 '익하(益河, 이로운 강)', 황허를 '해하(害河, 해로운 강)'로 부른다고 한다. 창장 일대에는 잦은 범람으로 퇴적물이 풍부하게 쌓여 토지가 비옥해지고 식량 생산이 늘어나 이로운 강이라 칭하고, 황허는 상당 부분 굽이지고 물길이 사나워 자주 제방을 넘어 화베이(華北) 평원을 범람해 '중국의 우환', '다스릴 수 없는 강'이란 별칭이 붙었다고 한다.

잠깐 동안의 여행으로 어찌 한 나라의 형편을 모두 알 수 있으랴만 중국 제3의 강으로 일컬어지는 회하(淮河) 또한 귤화위지(橘化爲枳)나 남귤북지(南橘北枳,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나라가 크면 큰 만큼 치수(治水)가 큰 문제이긴 한 모양이다.

나는 황허를 떠나며 진시황 사후 드넓은 관중 평원을 두고 한고조 유방과 결전을 벌인 초패왕 항우가 우희를 보며 마지막으로 읊었다는 해하가(垓下歌)를 떠올렸다.

'힘은 산을 뽑고, 기백은 세상을 덮건만(力拔山兮氣蓋世)/ 때가 불리하니 오추마도 뛰지 않는구나(時不利兮騅不逝)/ 오추마가 뛰지 않거늘 무얼 어찌할 수 있으랴(騅不逝兮可奈何)/ 우희여, 우희여! 그대를 누가 어찌할까(虞兮虞兮奈若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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