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물든 괴시마을
들판에 메밀꽃이 무더기로 피었다. 그 너머로 괴시마을 고택의 기와지붕들이 나란히 키를 맞추고 있다. 망일봉 자락에는 붉고 노란 가을볕이 번진다. 그 볕에 이끌려 천천히 마을 쪽으로 걷는다.
동해가 가까운 마을로 가고 싶었다. 그리웠고 닿고 싶었다. 그 마음을 따라 길에 올랐다. 메밀꽃에 눈을 팔다 고개를 드니 이정표가 보인다. '괴시민속마을'까지 100m, '목은이색선생유적지'까지 300m. 흰 화살표 두 개가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목은 이색(牧隱 李穡, 1328~1396), 역사책 속의 어른이 나그네의 걸음을 재촉한다.
고려 말의 대학자 목은 이색은 이 마을에서 태어났다. 외가인 함창 김씨가 터를 잡고 살던 곳이다. 훗날 1630년 무렵, 조선 인조 때 영양 남씨가 들어서면서 남씨 집성촌으로 자리를 잡았고, 대를 이은 문중의 내력이 오늘까지 이어진다.
마을 앞에는 너른 영해평야가 펼쳐져 있다. 이 평야를 가로질러 동해로 흘러드는 물길이 있다. 송천이다. 주변에 물도랑과 늪, 연못이 많아 마을은 본래 호지촌(濠池村, 도랑과 연못이 있는 마을)이라 불렸다. 마을 이름을 괴시(槐市, 느티나무 마을)로 붙인 인물은 이색이다. 원나라에서 공부한 이색은 고향의 풍경이 국자감 박사 구양현이 살던 괴시와 닮았다고 여겼다. 이에 마을 이름을 고쳐 불렀다는 일화가 전한다.
목은을 기리는 유허비 앞에 선다. 오래된 마을에 가면 그곳의 비롯됨이 궁금해 유허비를 찾곤 한다. 단청을 올린 비각 안의 석비를 들여다본 뒤 마을 어귀로 몸을 돌린다. 멀리서 한 줄로 보이던 지붕들이 서로 다른 집으로 갈라진다. 담장이 꺾이는 곳마다 안쪽으로 길이 열린다. 그 길을 따라 고택들이 저마다의 모습을 드러낸다.
◆깊고 너른 집, 괴시파 종택
괴시마을은 영양 남씨 괴시파가 대를 이어 사는 곳이다. 괴시파 후손인 남용순 선생이 길잡이로 나섰다. 먼저 도착한 곳은 괴정 앞의 지당이다. 곳곳에 한시와 우리말 풀이를 나란히 새긴 시비들이 서 있다. 이색의 「영해를 생각하다」를 읽고, 그 옆으로 옮겨 괴정 남준형(槐亭 南峻衡, 1703~1778)의 「삼을 심으면서」를 읽는다. 삼을 심고 돌아와 시냇가에서 발을 씻고, 나무 아래 앉아 시를 읊는 소박한 하루가 담겨 있다.
괴정 안으로 들어간다. 정면 네 칸에 팔작지붕을 얹은 정자다. 남준형이 1766년에 세워 목은을 우러른다는 뜻의 '경목재'(景牧齋)라 부르며 지내던 곳이다. 남인의 학문적 전통을 이은 그는 벼슬보다 선비의 도리를 무겁게 여기며 학문을 닦고 후학을 길렀다. 괴정은 여러 차례 고쳐 지어졌고, 한국전쟁 뒤에는 야학 학당으로 쓰였다. 공부하던 자리가 시대를 건너 마을 배움터가 되었다.
종택으로 향하기 전 물소와(勿小窩) 고택에 들른다. '작은 것이라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는 뜻이 담긴 이름이다. 관례에 따라 종가에서 분가한 남택만(南澤萬, 1729~1810)의 호이기도 하다. 그는 당쟁이 끊이지 않던 한양을 멀리하고 이곳에 은거하며 살았다. 증손자 남유진(南有鎭, 1818~1884)은 증조부를 기려 19세기 후반에 이 집을 지었다.
집 앞길에서 물소와 고택 사랑채로 눈길을 돌린다. 안채와의 사이에 짧은 담장이 놓였다. 사랑채를 드나드는 외부인의 시선이 안채에 곧바로 닿지 않도록 세운 헛담이다. 담장 너머로 각 채의 지붕이 이어진다. 안채와 사랑채를 하나로 이은 이 집은 경북 북부 지역에서 볼 수 있는 뜰집이다.
길 안으로 더 들어가니 괴시파 종택이 한눈에 들어온다. 골목에 가려졌던 집의 규모에 걸음이 멎는다. 정면 여덟 칸, 측면 다섯 칸 반의 본채가 'ㅁ'자로 마당을 감쌌다. 본채 오른쪽에서 사랑채가 앞으로 세 칸 뻗어 나왔다. 그 위로 팔작지붕의 처마 끝이 하늘을 향해 들렸다. 사랑채 마루 가장자리에는 낮은 나무 난간을 둘렀다. 처마 아래 걸린 '괴장고옥(槐庄古屋)' 현판을 올려다본다. 마당 옆으로 걸음을 옮기자 사랑채가 별도의 한 채처럼 도드라진다.
종택은 17세기 말 영양 남씨 가문의 기틀을 다진 입천 남붕익(卄川 南鵬翼, 1641~1687)이 지어 올렸다. 사랑채 오른쪽에는 불천위 사당이 산기운을 받으며 앉았다. 한 울타리 안에 가족의 살림과 문중의 역사가 함께 깃들었다.
본채 창호 위 벽면에 긴 명단이 붙어 있다. 문중 일을 맡은 후손들의 이름이 나란하다. 가까이 다가가 오른쪽부터 읽어 본다. 담당하는 재실에 따라 이름을 나누어 적었다. 문중을 지키는 일이 여러 후손의 몫이 되어 명단에 담겼다.
명단을 살펴본 뒤 남용순 선생을 따라 대문간으로 향한다. 선생이 닫힌 문을 연다. 안으로 들어서니 밖에서 보이지 않던 안마당이 나타난다. 마당 건너 안채 한가운데에 대청마루가 놓였다. 왼쪽에는 안방과 부엌이, 오른쪽에는 윗방과 작은 부엌이 있다. 양쪽의 살림 공간이 안마당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본다. 바깥에서는 길게 펼쳐졌던 집이 안에서는 마당을 중심으로 짜였다.
마당을 건너 대청마루에 오른다. 대청 뒤편에는 널판을 이어 짠 여닫이문이 달렸다. 문틈으로 가느다란 빛이 스민다. 문짝을 양옆으로 여니 뒤란의 풍경이 한꺼번에 들어온다. 차경이 따로 없다. 돌 틈에는 풀이 자라고, 그 뒤로 빽빽한 대나무가 비탈을 덮었다. 가을볕을 받은 댓잎이 그늘진 대청에서 한층 환하게 보인다.
뒤란을 더 내다본다. 집 뒤의 산자락이 손에 닿을 듯 가깝다. 대청은 앞쪽의 안마당과 뒤쪽의 산자락 사이를 잇는다. 종택을 비롯한 이 마을의 집들은 망일봉을 등지고, 송천이 흐르는 영해평야를 바라본다. 산을 뒤에 두고 물을 앞에 둔 배산임수의 지형을 따르다 보니, 집들은 대체로 서남쪽을 향해 앉았다.
대청 기둥은 별다른 꾸밈 없이 보를 받친다. 짙은 갈색 기둥에는 갈라진 나뭇결과 옹이가 선명하다. 그 위로 서까래가 가지런히 뻗었다. 눈길을 다시 안마당으로 돌린다. 자갈을 깐 마당 가장자리로 돌기단이 이어지고, 그 위에 창호가 놓였다. 처마 아래 놓인 신발과 수도 곁의 대야가 은근히 정겹다. 밖에서 마주한 종택의 규모와 달리 가족이 생활하는 안쪽은 소박하다.
안채 옆으로 걸음을 옮기니 또 하나의 마당이 열린다. 낮은 툇마루 앞에 크고 작은 항아리들이 모여 있다. 가을볕이 둥근 항아리마다 윤기를 더한다. 마당 한쪽 그늘에는 네모난 돌로 테를 두른 우물이 보인다. 안마당에서 미처 헤아리지 못한 집의 깊이에 놀란다. 괴시파 종택은 여러 채가 한 몸으로 이어지면서도 그 안에 안마당과 뒷마당을 품은 깊고 너른 집이다.
◆내가 돌볼 집으로
종택을 나와 다시 마을을 걷는다. 담장 위로 감나무가 가지를 뻗었다. 주황빛 감들이 가지에 달렸다. 가지 끝에 홀로 드러난 감도 있고, 잎 뒤에 반쯤 숨은 감도 있다. 눈길을 낮추니 담장 위 기와에 희고 옅은 얼룩이 번져 있다. 세월의 흔적은 이처럼 기와 하나하나에도 살뜰히 배었다.
마을에는 유서 깊은 고택들이 더 있다. 사곡댁이라는 이름에는 경주 사곡마을과 맺은 혼인의 인연이 남아 있다. 내앞댁은 사랑채가 앞으로 뻗어 나와 '날개집'으로도 불린다. 영감댁을 지은 남흥수(南興壽, 1813~1899)는 어려운 이웃을 아우르고 서숙을 세워 아이들을 가르쳤다. 자신의 집만 세운 것이 아니라 이웃의 삶도 돌봤다.
한 집을 건사하는 일은 쉽지 않다. 여러 집이 이웃하여 마을을 이루는 데는 더 많은 손길이 든다. 고향 집을 두고 대처로 떠나야 했던 이들이 있다. 나이 들어 돌아와 마을과 집을 돌보는 이들도 있다. 떠나고 돌아오는 사람들 사이에서 집을 지키는 손길이 대를 잇는다. 그 애씀 덕에 후손도 외지인도 괴시마을의 문턱을 넘는다. 발길 닿는 집마다 누군가의 애씀이 있다.
걸어온 골목과 문을 열고 들어간 집들을 돌아본다. 그 안의 삶이 늘 평온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집을 고치고 살림을 추스르며 자신의 삶을 살아냈으리라. 가을볕을 쬐며 당신 댁 입구에 앉아 계신 사곡댁 어르신이 잘 가라고 손을 흔든다. 이제 내가 돌볼 집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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