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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뜨고 코 베이는' 세상…사기범죄 대구서만 1만5천건

지난해 대구에서만 1만4857건, 전국적으로도 30만건 육박
형법상 사기죄 성립되지 않는 경우 많아 피해자들 분통

대구 사기범죄 표

한 해 27만 건, 2분 당 1건. 국내에서 일어난 사기범죄 건수다. 신고된 것만 이 정도다. 가히 '사기공화국'이라 부를 만하다.

기부를 빙자해 거액을 가로챈 청년 기부왕 사건, 수십명의 피해자를 양산한 깡통주택사건 등 대구지역을 뒤흔든 굵직한 사기범죄부터 수십만원 단위의 사기까지 사기 종류와 규모도 다양하다.

피해 회복은 더디고 형량은 낮다는 지적 속에 채무불이행과 사기 사이에서 사기범죄는 끊임없이 자라나고 있다.

13일 대구경찰청에 따르면 2017년 1만 건 정도였던 사기범죄는 2018년 1만2천 건, 지난해 1만4천857건으로 해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전국적으로도 2017년 23만 건이던 사기범죄는 2018년 27만 건, 지난해 9월 기준 22만 건이 발생했고 올해는 더 증가할 것으로 경찰청은 내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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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사기범죄 표

그러나 사기 범죄 숫자에 비해 무죄 판결이 나오는 사례가 적지 않다. 돈을 빌릴 '당시' 갚을 의사나 능력이 있었지만 돈을 빌린 뒤 사정이 어려워 갚지 않고 있다면 채무불이행으로 보기 때문이다. 형사상 사기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돈 빌릴 때 갚을 능력이 있었다면 사기가 아닌 셈이다. 돈을 받을 사람 입장에서는 속 터지는 일이다.

전문가들은 사기 수법이 나날이 발전하는 점도 사기 범죄 증가의 주요 원인 중 하나라고 보고 있다. 최근에는 카카오톡,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를 이용해 지인인 척 금전을 요구하는 신종사기 수법인 '메신저피싱'까지 등장하면서 경찰청은 사이버 금융범죄 항목에 '메신저피싱'을 추가했다.

김택수 계명대 경찰법학과 교수는 "사기 범죄자들 사이에선 '사기는 남는 장사'란 얘기도 나온다"며 "범죄자가 은닉한 재산을 찾아내 그에 비례하는 벌금을 선고하는 등 수사당국이 강력하게 추징·몰수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아리송한 사기죄…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일상생활에서 사기가 난무하고 있지만 그 경계가 불분명하다. 워낙 아리송하다 보니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이 때문에 법원 1심과 2심 판결 결과가 달라지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또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사기인 거 같은데 사기가 인정되지 않는 경우도 적잖다. 사기 당한 사람의 잘못을 더 주요하게 보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실제로 지난 1년 간 대구지법에서 열린 사기 혐의가 적용된 재판 가운데 무죄(일부 무죄 포함)가 언급된 확정 판결문을 분석해 보니 재판부별로 혐의에 대한 판단이 크게 엇갈렸다. 피해를 호소하는 이들에게 더욱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경우도 많았다.

경북 안동에서 식당과 공예방을 운영해온 김아리송(가명) 씨는 카드대금 4천만원을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됐다. 이후 사채업자 4명으로부터 일수로 돈을 마련해 돌려막기 식으로 버티다 보니 채무가 1억원에 이르렀다.

김 씨는 결국 같은 아파트 이웃주민에게 돈을 빌리기 시작했다. '공예 재료비가 필요한데, 돈을 빌려주면 10일 안에 갚겠다'며 1천500만원, '식당 운영자금이 필요하다'며 1천350만원을 빌리는 등 6차례에 걸쳐 모두 5천50만원을 빌렸다.

김 씨는 이웃주민이 망설일 때면 '세무사인 남편이 있으니 걱정말라'며 안심시켰다. 하지만 남편과 이혼한 김 씨는 당시 남편과는 연락조차 하지 않는 상태였다.

이런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주민들은 김 씨를 고소했지만, 1심 결과는 무죄였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개인파산 상태이긴 했지만 당시 식당 및 공예방을 운영하며 월 900만원의 수익이 있었고 공소 제기 이후에는 피해자와 합의하기 위해 2천300만원을 공탁한 점, 이 전에도 소액이긴 하지만 꾸준하게 돈을 변제해온 점, 피해자가 위험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점을 종합했다"고 했다.

그런데 최근 있었던 항소심에선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유죄를 선고했다. 김엄마가 갚을 능력이나 의사도 없이 피해자를 속였다고 본 것이다. 형량은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 피해자들은 자신들의 정신적 피해에 못 미치는 결과라며 분노했다.

◆'분양 꼼수' 알아채지 못한 분양자 책임

29가구 규모의 아파트 분양 사업을 준비하던 이분양 대표는 분양면적에다 서비스 면적(발코니)을 포함시켜 분양가를 재산정했다. 일반적으로 분양가에 포함되지 않는 서비스 면적도 분양면적에 포함시켜 아파트 크기를 부풀리는 꼼수를 쓴 셈이었다. 79.3925㎡(24평) 면적은 101.3924㎡(30.7평)가 됐고 분양가도 평당 570만~590만원까지 떨어졌다.

일부 투자자는 '평형에 비해 좁아보인다'고 지적했지만 그럴 때마다 이 대표는 "벽체가 두껍다"거나 "주차면적이 넓다"고 둘러댔다. 아파트 분양가는 주거전용면적과 주차장 등 공용면적을 합한 분양면적을 기준으로 정하기 때문이다. 이후 분양을 받은 피해자들은 사기분양이라며 이 대표를 고소했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대구지법 재판부는 이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아파트를 분양받으려는 일반인이라면 분양계약서, 팜플렛 등을 통해 서비스 면적이 포함될 것이라는 점을 쉽게 인식했을 것"이라며 "분양자들이 주의를 기울였다면 각 면적항목에 관해 의문을 가지고 설명을 구할 수 있었다"고 했다. 속아 넘어간 분양자들의 잘못이 더 크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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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로 본 사기 공화국의 면모

사기공화국의 면모는 통계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대검찰청이 2018년 발생한 27만8천566건의 사기범죄를 유형별 특성에 따라 분석해 보니 전 연령대를 대상으로 다양한 유형의 사기범죄가 끊임없이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적으로 '사기'라고 했을 때 고액과 연결짓는 경우가 많지만 대검찰청이 지난해 발간한 '범죄유형분석'에는 사기범죄로 인한 피해액이 10만원~1억원 사이에서 고른 분포를 보였다. 10만원 초과~100만원 이하가 29.7%로 가장 많았으나 100만원 초과~1천만원 이하(26.9%), 1천만원 초과~1억원 이하(21.8%) 비율도 비슷했다.

'속이는 방법'으로는 쉽게 유형화하기 어려운 '기타'가 절반에 가까운 43.9%를 차지했다. 이 밖에 물건을 살 것처럼 속이는 매매 가장이 23.1%, 가짜를 진짜로 속이는 것이 19.5%, 돈을 빌리고 안 갚는 차용 사기가 8.9%로 뒤를 이었다.

연령대별로는 41~50세 피해가 22.4%, 51~60세가 21.2%로 비슷했고, 20대와 30대 평균 피해도 19.5%에 달했다.

경찰대학 치안정책연구소 관계자는 "스마트폰 등 모바일의 발달로 비대면 사기범죄가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범죄자들은 새로운 범죄 수법을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있다"고 했다.

◆피해회복도 문제… 회수금은 1%에도 못 미쳐

사기범죄 피해자들의 정신적·금전적 피해는 오랜 기간 지속된다. 특히 당장 돈이 궁한 서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적잖아 심리적 타격이 더욱 강하고 오래 간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법무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4년 사기범죄 회수금은 1%에도 못 미친 것으로 드러났다. 한 푼도 회수하지 못한 경우도 95%에 달했다.

사기범죄 피해자가 돈을 돌려받기 위한 과정은 지난하다. 형사소송에 이어 민사소송까지 제기해야한다. 재판 준비 과정에서 드는 비용도 만만찮다. 설령 승소한다해도 범죄자가 피해 금액을 다 써버렸거나 해외로 빼돌렸을 경우 되돌려 받기도 쉽지 않다.

검찰도 사기 금액이 1억원 미만이면 구속수사를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범죄자가 그동안 범죄 수익을 빼돌릴 시간을 준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8월부터 범죄자가 빼돌린 재산을 국가가 찾아 돌려주도록 한 '범죄재산몰수법'이 시행에 들어갔다. 하지만 구체적인 시행령, 시행규칙은 아직 마련돼 있지 않아 사실상 유명무실한 제도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낮은 형량과 관대한 처분 탓?

전문가들은 낮은 형량과 관대한 처분 등이 사기범죄를 부추긴다고 지적하고 있다. 사기 관련 범죄를 줄이기 위해서는 형량을 상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현행 형법상 사기죄의 법정형은 10년 이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이다. 법원의 양형 기준상 일반사기(1억원 이하)의 기본 형량은 징역 6개월~1년 6개월. 형량이 낮다 보니 재범률이 높다는 것이다.

2014년 대검찰청 범죄분석 자료에 따르면 사기범죄의 동종 재범률은 38.8%로 살인과 강도 등 주요 강력범죄의 재범률(12.4%)에 비해 3배가 넘었다.

형법 조문을 세밀화하고 사기범죄 전담부를 신설해 적극적인 수사를 독려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현행 사기죄 조문과 법리는 수사기관과 재판부의 자의가 개입할 여지 많아 해석 문제로 억울한 피해자가 생긴다는 주장이다.

대구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 변호사는 "수사기관이나 재판부에 따라 다른 해석 문제로 억울한 피해자가 생기는 것을 막아야 한다"며 "아울러 사기범죄와 관련해 검찰에게 잘하면 인센티브를, 못하면 불이익을 주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고 했다.

그러나 형벌 강화가 반드시 범죄 예방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라는 반론도 만만찮다. 이정원 영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형벌 강화 논의의 시작점은 죄를 지은 특정 사람에 대한 보복심리"라며 "경기가 어려워 빌린 돈을 당장 갚기 어려워지는 단순 채무불이행도 상황에 따라 사기죄가 될 수 있어 형벌 강화는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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