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에 간 아내와 철훈이가 돌아오면 저녁식사를 하려고 기다리다 문득 장난기가 발동해 여덟살짜리 철희에게 "아빠 배고픈데, 밥상 차려줄래"하며시치미 뚝 떼고 식탁에 앉았다. 막내라 평소 자기일 외엔 잘 하려들지 않던녀석도 오늘따라 마음이 동하는지 "아빠 가만히 앉아계세요. 내가 차려줄게요"하더니 밥솥을 열어 어설픈 주걱질로 밥을 떠고 국이며, 생선구운것, 야채전 등 아내가 장만해둔 반찬들과 물컵까지 식탁에 차려놓고는 "아빠, 나잘하지요"한다.내친김에 "철희야, 아빠 밥먹는동안 재미있는 얘기해줄래"했더니 어린이잡지책을 들고와서는 웃음보따리라는 내용을 읽어주며 연신 "재밌죠? 재밌죠"묻는다.
기분좋게 식사를 마친후 아내를 마중갔다가 만나지못하고 돌아오다 철희가빵이 먹고싶다기에 제과점에 들러 녀석이 좋아하는 빵을 샀다. 가게에 가서우유를 사오라며 돈을 주었더니 웬걸 분식집으로 쓱 들어간다.쥐포, 꼬치, 어묵따위를 좋아하는 녀석이라 그런가보다 하고 기다리는데잠시후 한손에 우유, 또 한손엔 종이에 싼 뭔가를 들고와서는 "아빠 잡수세요"하며 쑥 내민다. 기름에 튀긴 쥐포였다. 녀석이 무척 좋아하는 것일텐데….
제몫은 사지 않고 빵을 사준 고마움의 표시로 아빠에게 갖은 마음을 다하는 녀석의 작은 얼굴을 보며 가슴뿌듯한 기쁨을 느꼈다.
생각해보면 내 자식에게서 느끼는 이런 기쁨을 아직 나는 내 부모님께 한번도 드려보지 못했다. 여덟살짜리 철희는 철들었는데 아버지인 나는 철이덜 든것 아닐까.
(대구시 수성구 범어4동 75의 2 삼오아파트 가동 3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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