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코다이(특공대) 병사 하시가와. 내 인생을 송두리째 짓밟은 일본이란나라는죽을때까지 용서할 수 없지만 하시가와라는 한 병사의 이름은 차마잊을 수 없다. 주인놈에게 고문당하던 그날 내방에 와있었던 그는 자기때문에 곤욕을 치른 것으로 여겨선지 매일같이 약이랑 빵 등을 가져오고 직접 주사도 놔주곤했다. 손끝하나 건드리지 않고 정성껏 간호해주었다. 위안소에서불려진 도시코라는 이름도 그가 지어주었다.몸이 회복되자 나도 어쩔 수 없이 군인들을 받아야만 했다.우리들은 하루에 4~5명씩의 도코다이를 상대했다. 전투기와 함께 죽어야만하는 도코다이들은 특별한 대접을 받았고 그때문인지 우리들을 잔인하게대하지는 않았으며 비교적 점잖았다. 그러나 그들 역시 우리를 일본군의 성적 노예로 대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생리가 있을때도 그들을 거부할 수 없었고 심지어 말라리아에 걸려 온몸이 사시나무 떨듯 덜덜 떨려도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다른 지역에서 위안부생활을 했던 사람들중에는 군표니돈을 받았다는 경우도 있다던데 우리는 그런 것이 있는 줄도 몰랐다.주인놈은 우리가 혹시도망이라도 갈까봐 그런지 걸핏하면 두들겨패 우리는 고양이앞의 쥐처럼 두려움에떨며 지냈다. 도망갈 생각은 꿈도 꾸지 못했다.
그무렵은 미군기의 공격이 심해져서 하루에도 몇번씩 대피해야할 때가 많았다. 그러다가 공격이 잠시 잠잠해지면 밭이고 논이고 아무데나 포장을 쳐놓고 군인들을 받아야했다. 바람이 불어 포장이 후닥닥 넘어져 안이 다 보여도 군인들은 남의 시선따위는 개의치 않았다. 참으로 개, 돼지가 따로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오전10시무렵 또다시 공습이 시작됐다. 얼른 위안소 밑의지하방공호에 뛰어들어갔는데 순간 위안소건물이 내려앉았는지 흙더미가 무너져내렸다. 칠흑같은 어둠속에서 두손으로 필사적으로 흙더미를 헤쳤다. 위안소의 다른 친구와 함께 죽을둥 살둥 파헤쳤다. 얼마나 팠을까, 마침내 작은 구멍이 뚫렸다. "아이고 밖이 보인다"며 정신없이 허우적거려 마침내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바깥엔 무슨 독한 연기같은것이 나고 있었는데 그때문인지 코로 입으로 피가 덩어리째 쏟아져 나왔다. 친구는 양손의 손가락들이 죄다 문드러져 있었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이번엔 폭격으로 움푹 팬 웅덩이에 미끄러져 들어갔다. 거기엔 나를 동생같다고 했던, 고향이 평안도라던 그 여자가 가엾게도폭탄에 맞아 퉁퉁 부은 모습으로 죽어있었다. 그 폭격으로 주인놈의 조선인첩도 죽었다고 했다. 나는 머리와 목을 다쳐 한동안 고생했는데 요즘도 그후유증인지 한쪽 귀에서 마치 비행기소리 같은 시끄러운 소리가 계속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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