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광복50-지역문화 성과와 과제-무용

일제시대 권번출신을 중심으로 맥을 이어온 대구의 한국무용은 달성권번을운영하던 박지홍과 궁중여악 출신인 정소산을 통해 뿌리를 내렸다. 현대무용은 일본의 현대무용을 그대로 받아들여 퍼지기 시작한 후 40년대 후반 김상규라는 뛰어난 거목을 배출했다.60년대전까지는 박지홍의 제자인 최희선씨(한국무용)와 김상규(현대무용)의 공연외에는 찾아보기 힘들었지만 무용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60~70년대에는 소규모 학원중심의발표회가 잇따랐고, 신진무용가들의 출현도 빈번해졌다.

80~90년대에 이르러서는 개인중심의 발표회보다는 그룹의 단체활동이 활발해져 대구무용계는 전성기를 맞게 된다. 81년 대구시립무용단 창단에 이어계명대와 대구효성가톨릭대, 신일전문대에 무용과가 설립돼 참신한 무용수들이 배출돼 지역무용계의 미래를 밝게 했다. '창무회'를 비롯, '효무회' '7인무용연구회''시리우스' '한내' '소라댄스 앙상블'등이 창단됐고 '지역간 연합무용제전'이나 전국대회 규모로 치러진 대구무용제, 신인무용제등을 통해타지역과의 활발한 교류를 벌이는등 대구무용계는 전성기를 맞고 있다.반면 지연, 학연에 매인 무용인들간의 반목과 공연공간의 부족, 평론가 부재현상등은 대구무용계가 해결해야 할 과제로 지적된다.

〈정지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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