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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노트-고향사람들과 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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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아직도 여전히 '각하'였다.검찰 소환에 불응하고 고향으로 가버린 전두환 전대통령을 취재하러 간 합천군 율곡면, 그의 고향마을에서 기자는 그동안 잊어버렸던 '각하'라는 말을 다시 들을 수 있었다.

주민들은 그를 일컬을 때 하나같이 '각하'라고 부르며 예우했다. 이들은전씨가 대통령직에 있었을 때는 물론 퇴임한 후에도 줄곧 그렇게 불렀다고한다. 그런만큼 이 단어는 율곡사람들에게는 자연스럽고 익숙한 것이어서 그렇게 불린 사람이 반란죄로 쫓기는 피의자라고 생각하기에는 혼란스러울 지경이었다.

고향 사람들의 '극진한 대접'은 단지 호칭에만 그치지 않았다.선친이 묻혀있는 지리재 묘소에는 '각하, 고향에 잘 오셨습니다. 힘내십시오' 같은 플래카드가 두개나 걸려 있었다. 그가 차에서 내렸을 때는 박수와함께 환호가 몇차례나 터졌다.

구속을 촉구하던 재야단체 회원들은 심한 야유와 몸싸움을 당해야 했고 심지어 영장을 집행하러온 검찰 수사관들도 "X새끼야" "죽인다" 등의 험악한말을 들어야 했다.

이 탓인지 전씨는 개선장군 같이 행동하기도 했고 그가 머문 5촌 조카 집은 잔뜩 차려놓은 음식을 먹으며 들락거리는 주민들로 잔칫집처럼 보였다.마을의 한 젊은이는 이에 대해 "고향사람이니까 인간적으로 따뜻하게 받아주는 거죠. 역사적 평가는 사학자들이 할테고…"라고 설명했다. 밉든 곱든고향사람으로서 정을 거둘 수 없다는 얘기였다.

전씨에 대한 고향의 '환대'가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쫓기는 이를 거절않고 받아준, 그래서 전씨가 차가운 감방으로 가기 전 마지막 밤을되도록 편안히 보내도록 해준 고향사람들의 마음 씀씀이를 이해못할 것도 없을 것이다.

문제는 전씨가 이같은 고향 사람들의 정성에 제대로 답했는가에 있다. 이것은 단지 길을 닦고 음식을 대접하는 따위로 평가되는 것은 아니다.수하들을 데리고 길거리에 버티고 서서 반란수괴 등의 혐의가 청문회와 백담사 칩거로 씻겨졌다고 강변하는 것은 고장의 명예, 마을의 자존심을 드높이는 행동이 결코 아닌 것이다.

잘못된 행동에 대해선잘못된 것이라고 말하는게 가장 명예로우며 자신을아끼는 이들에게 보답하는 일임을 그는 아직 모르고 있는 것 같아, 마을사람들의 환대가 되레 안타깝게 느껴진 지난 주말이었다.

〈이상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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