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주 사라리 고분군 대규모 原삼국 유물

"'2천년 문화'베일 벗는다."원삼국 시대 유물 2천여점이 다량 발굴, 신라 성립기를 규정할 귀중한 자료로평가받는 경주 사라리 고분군은 개발의 와중에 2천~3천여평이 훼손된 사실이본보 95년 10월 2일자(16면 참조)에 의해 고발되면서 발굴로 이어진 귀중한 유적이다.

경주시 서면 일대에 위치한 사라리유적을 발굴하고 있는 영남매장문화재연구원(원장 이백규)은 이 유적에서 청동기 시대 주거지 5동, 목관묘 6기, 목곽묘 74기등 1백36기의 유구를 확인했으며, 토기류 1천1백여점, 철기류 5백20점, 기타장신구류등 총 2천여점의 유물을 대량 수습했다.

이중 유구의 바닥조사 과정에서 확인된 130호분의 피장자는 고대 삼보로 알려진 劍.鏡.玉과 재화의 의미를 지닌 판상철부(판모양 철 도끼, 길이 27~28㎝)를70여매나 부장하고 있어 정치 경제적으로 최고 首長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길이 3백25㎝, 폭 2백25㎝, 깊이 90㎝의 말각장방형(묘각을 만들때 모서리의 각을 좁히며 위로 쌓아가는 형식)의 묘광을 파고, 내부에 길이 2백5㎝, 폭 71㎝의목관을 만든 다음 길이 2백69㎝, 폭 1백20㎝의 목곽을 설치한 유관.유곽구조의130호분 목관과 목곽 사이에는 점성이 강한 흙을 작은 활석과 함께 채워넣었다. 바닥은 생토암반면을 이용하였으며 피장자의 허리부분에는 직경 70㎝ 정도로 파낸 요갱의 흔적이 확인된다.

지금까지 고고학계에서는 묘제상 관.곽의 문제에 대해 논란이 있었으나 이번에 유관, 유곽의 형태를 명확히 유지한 130호분이 발굴됨으로써 묘제 연구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했다 는 영남매장문화재연구원 이백규조사단장(경북대 교수)은 이 유구가 목관묘사회에서 목곽묘사회로 전환되던 2세기 전후에 형성됐을 것으로 파악한다.

목곽에 철 항아리(구경 27㎝, 높이 50㎝) 1점만 묻은 것으로 미루어 아직 목곽이 부장 공간의 역할을 하지는 않았다 는 관계자들은 130호분이 초기 목곽묘의양상일 것으로 추정했다.

목관 내부에는 7열로 70여매의 판상철부를 깔았으며, 머리부분의 목관 모서리양쪽에 판상철부를 각 1점씩 꽂아두고, 손잡이가 달린 세형동검(50㎝) 1점을 목관의 머리 오른편에 세워 둔 것은 피장자의 높은 지위를 상징적으로 나타내고있다. 판상철부는 원삼국 시대의 특징인 철기생산 보급의 확산과 관련, 당시 화폐 기능을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목관안에서는 청동손잡이가 달린 동검 2점(56, 75㎝) 철검 1점(45㎝), 청동손잡이 머리장식이 달린 철검 3점이 함께 출토됐고, 청동팔찌 2벌과 호랑이 모양 허리띠 걸쇠인 虎形帶鉤(20㎝) 2점이 피장자의 허리부분 좌우에, 수정을 잘라 만든 옥 목걸이(70㎝)가 피장자 목부분에 2줄로 길게 이어져 있었다.

손잡이 달린 동검, 倣製鏡(동경), 호형대구등 다양한 청동유물이 원형을 유지한 채로 발견되어, 지금까지 출토상태 불명의 자료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우리나라 청동기 문화 연구에 크게 기여할 것 이라는 관계자들은 사라리유적이 경주의 중심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정치력과 경제적 부를 상징하는 유물들을 매납한 것으로 미루어 경주를 중심으로 한 신라의 강력한 정치력과 경제력,초기 신라문화의 우수성을 가늠해볼 수 있다고 밝힌다.

한편 학계에서는 이 유적의 보존과 출토유물에 대한 보존처리가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崔美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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