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12.12및 5.18 7차공판에서 중요고비 때마다 全斗煥 전대통령등이 당시 작성했던 메모지와문서등을 공개해 눈길을 끌었다.
가장 먼저 등장한 것은 全斗煥피고인의 신문과정에서 全씨가 蘇俊烈 전교사령관에게 보냈다는 친필 메모.
全씨는 80년 5월23일 鄭鎬溶특전사령관을 통해 蘇씨에게 전달한 메모지에서 소선배 귀하, 공수부대를 너무 기죽이지 마십시오. 희생이 따르더라도 광주사태를 조기에 수습해 주십시오 라며 광주에서의 유혈진압을 적극 독려했다.
그러나 全씨는 88년 국회청문회에서도 메모는 없다고 말한 바 있다 며 만약그런 메모가 필요하다해도 그 좋은 전화가 있는데 굳이 메모지를 전달했겠느냐 고 부인했다.
이에 검찰이 林헌표 전교사 교육훈련부장은 광주비행장에서 전교사까지 정호용피고인과 함께 헬기를 타고 가는 동안 정호용 피고인이 메모지를 주머니에서 꺼내읽어주는 것을 보았다고 진술했다 고 추궁했으나 全씨는 이에 대해서도 전혀 사실이 아니다 고 강력 부인했다.두번째 메모지는 당시 육참차장이던 黃永時피고인에 대한 검찰신문과정에서 공개됐다.이 메모지는 黃피고인이 80년5월21일 전교사 부사단장인 金기석 장군과 직접 통화한 내용을 金장군이 메모했던 것으로 APC(경장갑차)는 코브라헬기로 때리고 차량은 500MD헬기로 진압하고 인원은 군병력으로 진압하라 고 돼 있다.
이같은 내용은 시위대가 탈취한 경장갑차는 코브라 헬기로 파괴하고 차량에 대해서는 500MD 헬기로 제압하라는 매우 강경한 진압 지시로 보인다.
검찰은 메모지의 출처에 대해 金씨가 보관하고 있다가 수사시에 제출했던 것으로 金씨는 책을쓰기 위해서 모아두었던 것 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메모지의 출처를 묻고 변호인들은 압수여부를 따지는등 높은 관심을 보였는데 黃피고인은 메모지를 보고나서도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으로 판단한 듯 전혀 모르는 것 이라고 부인했다.
세번째는 全斗煥씨측이 80년5월21일 오후 鄭棹永보안처장을 통해 李熺性계엄사령관에게 보냈다는자위권 천명 담화문 초안.
검찰은 이 문안을 확보하지는 못했으나 李피고인으로부터 자백 진술을 받아내는데는 성공했다.李피고인은 당일 오후 4시30분께 사무실에 와보니 출처를 알수 없는 자위권보유천명 담화문 초안 이란 문건이 있어 국방장관실에서 이 초안을 기초로 담화문내용을 검토한 바 있다 고 진술했다.
특히 李피고인은 법정에서 담화문 초안을 鄭棹永보안처장이 갖고 왔다 고 진술했던 검찰진술을부인하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그 초안은 보안사에서 갖고 온 것아니냐 는 추궁에 대해 그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겠다 고 사실상 시인했다.
마지막 문건은 全씨가 80년8월21일 周永福국방장관에게 전군주요지휘관 회의에서 자신을 차기 국가원수로 추대하도록 했다는 추대서 문안.
周피고인은 崔圭夏대통령 하야(8월16일) 5일만에 全씨가 장관 비서실을 통해 전군주요지휘관 회의를 소집해달라고 요청해 회의를 소집했으며 全씨를 이 자리에서 추대한 발언내용도 權正達 보안사 정보처장이 전달한 문건을 그대로 읽었을 뿐 이라고 진술했다.
周씨가 읽었다는 全씨의 추대서는 구국의 일념으로 탁월한 영도력을 발휘하여 국가의 위난을 수습하고 새 시대 새 역사의 지도자로 국내외에 뚜렷이 부각된 전두환장군을 차기 국가원수로 추대하자 는 것으로 현란한 수식어로 全씨 본인을 미화하고 있다.
周씨가 이같은 내용을 확인해줌으로써 全씨는 스스로 전군주요지휘관 회의를 소집, 보안사가 만든 추대문을 周씨를 통해 읽게 한 사실이 새로 드러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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