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 수출, 무리한 사업확장과 장기적인 노사분규는 기업인이면 누구나 두려워하는 일이다.
한때 대구의 섬유산업을 이끌었던 남선물산이 완전히 공중분해되게 된것도 결국은 이때문이다.
남선물산은 80년대초까지만 해도 연간 1억달러어치 이상의 섬유를 수출하는 굴지의 섬유 대기업이었다. 백욱기 박재갑등과 함께 대구 섬유산업의 기틀을 닦은 이로 평가받는 윤경보 전회장이 67년 설립한 회사로 무역을 시작하면서 대기업의 터전을 닦았는데 수출업을 시작한지 1년만에 산업포장을 받을 정도로급성장했다. 화섬직물 제조와 수출을 주력으로 해 일본 사우디 쿠웨이트에도지사를 설립했으며 철강업등에도 진출, 계열기업이 80년대초에는 8개나 되는 대기업이었다.
그러나 섬유 수출경기가 냉각되면서 시작된 수출 적자가 4년간 누적되다보니금융비용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83년 3백억원을 들여 설립한 남선방직마저 면사수출이 부진, 84년에는 1천억원의 부채를 가진 부실기업으로 몰락했다.주거래은행인 외환은행이 尹經普회장과 아들들을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게 하고본격적인 감리를 시작, 적자품목 생산중단과 임직업체 축소등 감량경영을 폈지만 금융권의 이자조차 메우기 힘들었다.
이때문에 남선물산은 결국 정부의 부실기업 정리방침에 따라 86년 회사정리 절차를 시작, 8개의 계열사중 영흥철강은 동양철관에 넘겼다.
또 남선방직 남선직물 보성섬유는 삼일염직과 삼일섬유에 공동 인수됐는데 삼일은 이를 통해 가공수출에서 제직까지 일관 체제를 갖추는 이득을 안게 됐다.주력기업인 남선물산은 한때 인수할 뜻을 비치던 코오롱이 경영정상화가 어렵다고 판단, 인수포기 의사를 밝힘에 따라 인수업체를 찾지못해법정관리 신청을내게됐다.
남선물산은 87년 향후 20년간의 법정관리신청이 받아들여짐에 따라 외환은행의관리하에 회생의 길을 찾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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