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귀순 郭중사 死線 넘은 33시간

"脫出 기척 들키자 北 哨兵 일제사격"

북한군 제31사단 민경대대 소속 곽경일 중사의 귀순과정은 손에 땀을 쥐게하는한편의 대탈출극이었다.

다음은 우리군이 포착한 12일의 북한군 동태와 곽중사의 귀순초기 진술 등을종합해 만든 탈출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을 재연한 것이다.

곽중사가 소속된 민경대대는 DMZ(비무장지대) 지역의 전방 경계초소를 지키는

아군의 민정경찰과 같은 성격의 부대.

2인 1조로 구성된 매복근무조는 통상 일몰시작 30분전에 투입된다.

따라서 곽중사는 11일 오후 6~7시 동료 1명과 함께 강원도 고성군의 통일전망대에 인접한 구선봉 일대의 북방한계선 부근 매복진지에서 평소와 다름없이 근무에 들어갔을 것으로 짐작된다.

오래전부터 탈출을 꿈꿔온 곽중사는 11일 밤이 탈출하기에 더할 나위없는 무월광 상태인데다 안개가 짙게 낀 점을 이용, 이날 밤을 탈출 D-데이로 잡았다.

곽중사는 자신이 귀순할 경우 고향의 부모 형제들이 당할 가혹한 처벌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아 탈출에 따른 두려움보다는 가족에 대한 연민으로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졌다.

밤이 깊어져 자정을 넘기면서 주위는 온통 밤벌레 소리만 들릴 뿐이었고 다른초병들은 밀려오는 졸음으로 연신 하품을 해댔다.

곽중사는 그동안의 경험으로 새벽의 경계가 가장 느슨한 점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시간이 더 흐르기를 기다렸다.

12일 새벽 4시께.

곽중사는 소총을 부여잡고 참호를 슬금슬금 빠져 나왔다. (군은 동반귀순 여부는 조사중이라고 밝혔다)

새벽 4시30분께 미리 준비한 도구로 북측 철조망을 끊고 철조망을 건넜다.

그때 부스럭 소리에 놀란 다른 경계병이 뉘기야 라고 외마디 소리를 지른 뒤방아쇠를 당겼다.

곽중사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계속 앞으로만 달렸다. 평소 정찰근무를 할때 그렇게 거추장스럽게 여겨졌던 주변의 우거진 잡목이 이때만큼만은 그지없이 고맙게 느껴졌다.

콩볶는 듯한 AK소총의 총성을 들으며 내달리는 동안 갑자기 뜨거운 무엇인가

가 몸을 스치는 느낌을 받았다. 끈적끈적한 뜨거운 액체가 흘러내렸지만 잡히면 죽는다는 생각에 무작정 내달렸다.

얼마나 달렸을까.

숨이 차 더이상 뛰지못하고 수풀속에 숨어있는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른다.

어둠의 장막이 걷히고 사위를 비추는 태양이 눈에 들어왔다.

살았다

다행히도 몸을 움직일 수 없을 정도의 부상은 아니었다.

곽중사는 날이 밝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이동하는 것은 오히려 생명을 재촉하기십상이라고 판단, 숲속에 숨어서 날이 어두워지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귀순후의 남한 생활에 대해 이따금 불안한 생각을 거둘 수 없었던 곽중사는 평소 접하던 삐라 내용을 곱씹으며 고통을 참았다.

총상으로 입은 상처 부위에서 엄청난 고통이 느껴졌다. 10시간의 낮시간이 수십년의 세월 같았다.

어둠이 다시 찾아왔다. 곽중사는 포복으로 평소 매복근무를 통해 낯에 익은 남방한계선쪽으로 계속 기어갔다.

12일 밤 10여시간동안의 사투끝에 곽중사는 남방 한계선에 다다를 수 있었다.

이제 남은 일은 투항하는 것뿐.

자칫 잘못하면 침투공비로 오인돼 개죽음을 당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곽중사는 평소 남측에서 뿌린 선무용 삐라를 통해 숙지한 대로 주변에 있던 나뭇가지를 꺾은 뒤 가지 한끝에 흰 내의를 찢어내 만든 헝겊을 묶었다.

꼼짝마라 손들어

남한 경계병의 목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곽중사는 순간 당황해 움찔했으나 곧 정신을 가다듬고 미리 만든 백기를 흔들며 귀순잡네다 라고 크게 외쳤다.

이때가 13일 낮 12시50분.

자유를 향한 33시간의 탈출극이 성공리에 끝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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