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書藝).
'문자를 소재로 하는 조형예술'이란 단순한 사전적 의미를 넘어선다. 점과 선의 다양함, 크고 가는 획의 변화와 장단, 필압(筆壓)의 강약및 경중, 빠르고 느린 운필의 흐름과 먹의 농담, 그리고문자들간의 비례와 균형이 한데 어우러져 미묘한 조형미를 이룬다.
여기에 모든 욕심으로부터 자유로운 갈끔한 마음 하나 덧붙인다면….
10년이란 짧지않은 서력을 줄곧 불교의 대표적 경전 반야심경(般若心經)을 옮기는데 매진해온 여성 서예가 김영숙(金榮淑.29)씨.
반야바라밀다(般若波羅蜜多). 완전한 지혜의 완성, 피안(彼岸)에 이르는 지혜를 찾기 위한 붓놀림으로 모든 잡스런 생각들을 잊는다.
"하얀 화선지위에 스며드는 먹빛깔이 좋아 서예를 시작했는데 지금은 단지 쓴다는 일념뿐입니다.욕심을 버리고 작업에만 몰두할 수 있게 하는 촉매제가 바로 반야심경입니다"전문(全文) 14행 2백70자에 불과한 작은 경전. 그러나 모든 법(法)이 공(空)하다는 심경(心經)의가르침엔 대가가 되고 싶다는 바람도 없이 그저 물흐르는 대로 살고픈 그의 인생관과 상통하는점이 없지 않다.
불교집안에서 자란 김씨는 자연스레 절에서의 생활을 체험하기도 했다. 제주도 신광사에서 천배,만배를 올리며 참는 법을 배웠다. 1천5백배를 넘어서기 서너달. 마음이 또렷해지면서 붓을 잡고싶다는 생각만 간절했다고 회상한다.
"실은 초등학교때부터 글씨공부를 하고 싶었는데 집안의 반대로 여의치 않았어요. 그래도 병석에계시던 아버지께선 많이 격려해 주셨는데…"
문자를 '그리던' 초보단계에서 벗어난지 아홉해, 그는 세상을 달리한 아버지를 추모하며 지난해12월 첫 개인전을 열었다. 반야심경을 전.예.해.행.초등 다섯 서체(書體)와 한글로 옮긴 작품만을모은 이색 전시회로 이목을 끌기도 했다.
92년부터 율산(栗山) 이홍재씨를 사사하고 있는 김씨는 현대서예대전, 매일서예대전등 각종 공모전에서 20여차례 특.입선한 바 있지만 공모전 입상은 그의 관심밖이다.
"공모전에 출품하는 것은 제 작업에 대해 객관적인 검증을 받고 싶어섭니다. 할줄 아는 게 글씨밖에 없어요. 앞으론 반야심경 외에 금강경도 테마로 삼아볼 계획입니다"
예부터 먹은 검은 빛이지만 또한 붓을 잡은 자에 따라 오채(五彩)를 겸하였다고도 전한다. 천경(千景). 그의 아호처럼 천가지 경치와도 같은 서예의 오묘함을 보여줄 그의 붓끝을 기대해본다.〈金辰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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