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에 벼락이 떨어진 걸 두고 이런저런 얘기들이 분분하다. 초여름 비오는 날의 낙뢰야 평범 한 기상현상일 뿐 특별히 화젯거리가 될 사건이 아닐법한데도 구구한 해석들이 나오는 것은 벼락 친 '때'가 대통령의 대선자금관련 담화발표직후였다는 것과 담화내용이 천심(天心=민심)과는 동떨 어진 내용으로 비판받고 있다는데 연유한 것 같다.
시체말로 '벼락맞을 소리'를 한 탓이라거나 '천심인 민심을 못읽는 독선에 하늘까지 노했다'는 식 의 불경스럽고 감정적인 언어폭력은 없어야겠지만 나라 조용히 만들자고 한 담화가 오히려 더 시 끄럽게 만들어 버린듯한 상황이 된만큼 역사속에서 벼락과 연관된 교훈과 정치해법을 찾아 배워 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
정확히 5백년전 1497년, 연산군 집권시 지금의 청와대격인 궁궐의 정전(正殿)에 벼락이 떨어졌다. 그때 예문관 대교(待敎)였던 정희랑(鄭希良)은 벼락을 계기로 궁궐의 10가지 잘못된 점을 들어 ' 하늘 무서운줄 모르옵니까'라는 요지의 상소(上疏)를 올렸다.
'…신이 듣건대 인사(사람의 하는일)가 아래(땅)에서 잘못되면 천변(天變)으로 위(하늘)에서 일깨 워 주는 것이니, 재앙을 내린다 하여 반드시 화가 되는 것이 아니고 이로 말미암아 착한 일을 하 게되면 도리어 길하게 된다 하였습니다. 전하께서 보위에 오르시어 나라에 궂은 징조만 자주 일 어나고 재변만 잇달아 겹쳐 나타나니 이는 하늘이 인애하는 마음이 있어 전하께 견책하여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전하께서 스스로 이를 깨닫지 못하고 자기몸을 굽혀 덕을 닦을 생각을 보이지 않 으신다면 또 재난을 당할 것이니 크게 마음을 바꿔야할 때입니다. 옛날 초나라 장왕도 산천에 기 도하기를 하늘이 이변을 보여주지 않고 땅이 재앙을 나타내지 않으니 하늘이 아마도 나를 잊은 것이 아니옵니까 라며 재난을 통한 하늘의 깨우침을 스스로 바랐습니다. 전하께서도 하늘이 인애 하는 마음으로 경고해주는 은권(恩眷)을 받고 스스로 새롭게 할 생각을 가진다면 천재는 막을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궁궐에 떨어진 벼락 하나도 왕의 경각심을 깨우쳐주는 하늘의 은혜로 생각 하도록 군주에게 호소하고 있다.
두번째 상소를 보자. '송태조가 말하기를 대궐문은 활짝 열어서 막히고 가린 것이 없게하자고 했 습니다. 바라옵건대 전하께서는 대궐안에 깊숙이 계시니 사람이 보지 못할것이라 여기지 말고 또 깊고 어두운 곳에서 한 일이니 나혼자만이 안다고 여기지 마옵소서'. 이 대목은 '대선자금 자료없음'의 은폐논리를 되씹어 보게하는 상소다. 전·노 두전대통령의 대선 자금 비리자료는 10~18년이 지난뒤에도 샅샅이 캐내 감옥으로 보내는 초능력을 가진 정부가 불과 5년전의 대선자금은 '자료를 못찾아 안밝힌다'는 논리는 깊고 어두운 곳에서 한 일이니까 국민은 모를거다는 생각을 하지 말라는 논리와 다를바 없다. 세번째 상소 또한 통치자의 독선과 아집이 어떤 정치적 폐해를 가져오는가를 경계하고 있다.
'임금이 남의 말 듣기를 싫어하고 자기멋대로 뜻을 두면 선비들이 모두 몸을 다칠까 입을 다물게 되고 맙니다. 이렇게 되면 백성의 원성이 가득해도 임금은 민심을 알 길이 없습니다. 지금 조정에 알력으로 불화가 생기고 있는바 이는 바로 전하께서 즉위하신 뒤로 주변에서 간하는 말에 거스름 없이 좇는 성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정희랑은 바로 이 궁궐벼락을 계기로 올린 상소로 인해 연산군의 미움을 쌓아 이듬해 의주와 김 해로 귀양가는 '날벼락'을 당한뒤 실종, 영원히 돌아오지 못했다. 그때 나이 34세였다. 그로부터 5 백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청와대 벼락을 놓고 충정어린 상소를 올릴 용기있는 신하는 어디에 있 는가. 눈치따라 말바꾸기만 하는 그 많은 용들은 귀양이 두려운 것일까. 많은 것을 생각케 하는 5 백년전의 상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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