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촌지 파문' 바라보는 老교장선생님

신문을 펼쳐든 노(老)교장의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서울 모 초등학교 여교사 촌지기록부 작성'이란 기사를 보며 회한어린 한숨부터 내쉬었다. 대구 경동초등학교 나상우교장(65)은 정년 퇴직을한달여 앞두고 있다. 교직생활 45년째. 가끔씩 옛 제자들이 보내오는 문안편지를 받으며 교직을천직이라고 굳게 믿어왔다.

"지난 53년 경북 상주에서 교단에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모두 살기 어려웠던 시절이죠. 하루는 학생이 집에서 담근 동동주와 짚으로 싼 달걀 한 줄을 싸들고 왔어요. 쑥스러운듯 달걀을 내려놓고달아난 학생의 뒷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언제부터 돈봉투, 고급향수가 학원에 '침투'했는지…"

촌지는 우리 교육계의 '해묵은 속병'. "항간에 '물 좋은' 학교에 발령받으면 1년에 승용차 한대뽑는 것은 누워서 떡먹기란 말이 나돈다더니…" 나교장은 지난 5월 대구시 수성구 모초등학교에서 있었던 촌지 관행의 추한 소문을 듣고 얼굴을 들 수 없었다고 했다.

소문은 고등학생 아들을 둔 한 초등학교 한 여교사(50)의 얘기. 이 여교사는 평소 학부모가 잘 찾아오지 않는 한 학생에게 체벌을 가하는 등 심하게 다뤘다. 고등학교 교사로 있던 학생의 아버지가 항의전화를 하기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공교롭게도 이 남교사는 여교사 아들의 담임교사였는데, 여교사는 이 사실을 까맣게 몰랐던 것. 아들을 통해 이같은 사실을 전해듣고 나서야 여교사의체벌은 중단됐다고 한다.

교사도 교사에게 촌지를 건넨다는 세간의 소문에 대해 나교장은 "믿기진 않지만 전혀 근거없는이야기는 아니지 않겠느냐"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올초 각급 학교장은 학부모들에게 '촌지를 받지 않습니다'라는 편지까지 보내는 등 교육계 전체가 촌지추방에 적극 나서고 있으나 일부 교사들이 촌지유혹을 떨치지 못하는 것 같다는 나교장."옛날, 아이 손에 찐감자며 옥수수를 쥐어보내던 학부모 마음은 지금과 달랐죠. 아이를 가르치는선생님에 대한 감사였지, 우리 아이만 잘 봐달라는 이기적인 마음은 아니었거든…" 촌지 관행을꾸짖는 나교장의 목소리엔 허탈함이 배어 있었다.

〈金秀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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