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담백" 절김치

'딱 따르르르, 딱 따르르르, 딱 따르르르'

새벽 찬기운이 완전히 가시기 전인 11일 아침 7시, 절안의 모든 노동력 동원을 알리는 운력 목탁이 세번 울리자 팔공산 부도암(주지 동호스님)에 있는 대중 40여명이 일제히 김장담그기에 동원된다.

"운력이 울리면 죽은 송장도 일어선다던가"

선방이 있는 사찰마다 결제(음력 10월15일, 11월14일)를 며칠 앞둔 요즘은 '겨울철 반양식'김장담그기 시즌이다. 이미 민가에서야 김장담그기 풍속도가 제빛을 잃고 있다지만 사찰의 겨울 반찬은뭐니뭐니해도 김장을 빼놓을 수 없다.

절음식이 맛있기로 소문난 부도암은 예년이나 마찬가지로 팔공산 중턱에서 스님네들이 직접 기른배추와 무로 김장을 담근다.

몇년전만해도 법랍이 꽤 된 고참납자들이 선방에 들더니 올해는 전국에서 금방 머리깎은 신참 스님네를 다수 포함한 스물댓명이 동안거를 위해 일요일을 전후해서 부도암을 찾았다.김장담그기 하루전인 10일 오전에는 피자맛에 길든 신세대 스님, 몇년전에 이어 두번째 찾아온구면의 스님도 모두 배추밭으로 향했다. 가을가뭄이 심하다지만 올해 배추도 작황은 괜찮은 편이다. 뽑은 배추를 소금에 절였다가 밤새 뒤집어놓았다.

11일 아침, 집안 살림을 도맡고있는 영호스님의 지시대로 김장 운력에 동원된 대중들은 배추를생수에 씻어 살평상에 집더미만큼씩 포개놓았다. 물이 빠지기를 기다리는 동안, 양념류를 준비하는 손길이 분주하다.

오신채를 쓰지않는 사찰 음식 전통에 따라 마늘·젓갈·파를 전혀 넣지않고, 생강·갓·청각·고춧가루·소금만으로 김장의 맛을 살린다. 엊저녁에 쑨 찹쌀풀에 버무려둔 고춧가루는 붉게 색을띠고 있다. 물이 빠지기를 기다리며 점심공양(오전 11시)을 마치고 정오가 되자 양념을 버무리기시작한다.

누군가 대중을 위해서 흥겨운 노래공양을 시작하자 양념을 버무리던 손길도, 절임 배추를 나르는발길도 일순 가벼워진다. 일종의 노동요인 셈이다.

염불을 많이해서 목청이 트인 덕분인지 스님치고 노래 못부르는 이는 별로 없다. 선방에 공부하러 들기 전날 일종의 신고노래처럼 부르는 방부노래는 흘러간 옛노래에서 주절주절거리는 X세대랩송까지 가지각색인 걸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민간에서는 온갖 양념류가 골고루 다 들어가야 김장이 되는줄 알지만, 절집에서는 젓갈 대신 소금으로 간을 맞추어 시원하고 단백한 맛이 특징"이라는 영호스님은 참선하는 이들이 너무 매운것 먹으면 위에 부담이 가게 되어서 덜 맵고 싱겁게 담근다고 들려준다.

외부에서 선방에 들기위해 온 스님들은 주로 배추에 양념을 버무리고, 힘좋은 젊은 비구니스님들은 절인 배추와 무를 옮기고, 살림살이하는 원주스님과 공양주인 무량심보살과 대덕행보살은 석빙고라 불리는 광의 대형 김장독에 채곡채곡 재는 소임을 맡았다.

미리 먹을 것은 심심하게, 설 지나서 먹을 것은 소금간을 넉넉하게 조금 짭게 담갔다. 바위를 뚫고 지어놓은 석빙고는 한여름에도 시원하여 식품을 저장하기에 그만이다.

어떨때는 표고버섯을 물에 불리거나 늙은 호박물을 받아서 담그기도 하지만 올해는 비교적 간단하게 담궜다.

"절김치가 유난히 맛있는 것이 좋은 물맛, 오염되지 않은 지기와 맑은 산기운이 골고루 섞였기때문이지"라고 동호스님은 설명한다.

"겨울철에 눈이 많이 오면 꼼짝없이 갇혀요. 그러면 양진암에서 내원암까지는 양진암 스님들이,내원암에서 부도암까지는 내원암스님들이, 부도암에서 동화사까지는 부도암 스님들이 눈을 쓸어내려가는데, 산내 암자스님들이 우리집 김치 맛있다고 얻어가고 그래요"

이 절의 총무스님이자 사찰음식연구회장인 홍성스님은 겨울철을 부도암에서 나는 이들은 동안거스님을 포함해서 40여명이고, 매월 초하루 법회에 1백50여명이 참가하니 어지간히 김장을 담가서는 감당을 못한다고 말한다.

비교적 젊은 스님들은 김치를 적게 먹는 편이지만, 겨울에 사찰에서 따로 먹을 반찬거리가 없는부도암에서는 올해도 어른 키만한 대형 김장독 열개에 가득 담근 김장으로 겨우살이 준비를 끝내고 깨달음을 향해 치열한 구도행이 될 세달 동안의 동안거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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