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목요칼럼 '세풍'-백성들은 참담하다

널리 알려진 솔로몬 왕의 재판은 많은것을 생각케 한다. 왕은 한 소년을 두고 서로 제 자식이라다툼질 하는 두 여인에게 "아이의 팔을 잡아당겨 이기는 쪽이 어머니"라 선언했다. 힘 겨루기는잠깐, 소년의 팔이 떨어질까 다급해진 한쪽 편 여인이 "내 아이가 아니니까 이제 그만…" 손을 놓고 말았다던가. 고대 왕조시대 왕에게 거짓말은 죽을 죄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아파하는 아들이얼마나 애처로웠으면 중벌을 무릅쓰고 자식이 아니라 했을까.

이처럼 사람은 진정 자신이 아끼는 혈육이나 이웃, 때로는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자신을 던져희생하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인간과 사회에 대한 참사랑의 마음이자 국난기의 정치 지도자가꼭 갖춰야 할 덕목이기도 하다. 그래서 하는 말이지만 이번 대선전에 나선 후보들 모두가 집권욕만 가득할 뿐 이나라를 진정 아끼고 애타게 걱정하는 이의 마음가짐은 아닌것만 같다. 만약 진정그가 사무치게 이나라를 아끼는 사람이라면 3천년전 솔로몬 왕의 재판정에섰던 어린 소년의 그어머니처럼 "차라리 내가 당선 안되어도 좋으니 경제부터 살리자"고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음직도한데 말이다. 구국의 심정으로 국회 의정활동을 독려해서 계류중인 3백건의 민생법안을 신속히처리했어야만 했었던 것인데 말이다.

그런데도 세후보 모두가 의원들 거느리고 대선전에서 위세 부리느라 국회를 겉돌렸으니 기가 막힌다. 더구나 연일 외환시장이 개장하자마자 문을 닫고 IMF에 돈을 빌려야 할 만큼 절박한 형편에 대선 표를 의식, 금융개혁법안 처리를 대선후로 미뤄버린 그 무책임한 횡포에는 분노할 기력조차 없어진다.

대선 후보들의 선거공약만 해도 그렇다. 내년에는 자칫하면 실업률이 9%%대를 넘어선다고 아우성인데 2천년대초까지 국민소득 3만달러를 약속한 후보가 있는가 하면 농어촌 구조조정사업에 45조원을 투자하겠다는 등으로 장밋빛 공약 일색이다. 과연 공약을 지킬수 있는지를 검토라도 해보았다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공자(孔子)는 일찍이 나라 다스림의 기본은 치자(治者)와 백성간의 믿음에 있다했거니와 이러고서야 믿음이 생길리 만무이니 큰일이다.

김대중후보는 자신의 임기까지 담보로 내놓는 무리수에다 내각제개헌을 위한 정계개편 부담까지떠안은채 대선전을 치르고 있고, 이인제후보는 경선 불복이란 멍에를 짊어진 위에다 구시대 인물을 잔뜩 안고 세대교체를 외쳐대는 자가당착에 빠져있다.

이회창후보 역시 5·6공 인물에다 YS쪽 사람까지 때묻은 인사들을 잔뜩 안고는 3김청산이라는기치를 내세운 기이한 모습이다. 상대후보 비방과 폭로, 지역감정 부추기기등 타기해야될 모습들은 잇따르지만 구국(救國)의 경륜을 품고 고뇌하는 지도자의 모습은 찾을수도 없으니 행여나 하고 새 대통령에 기대를 걸수가 없을것만 같다.

한마디로 우리 정치권은 오랜 독재정치의 결과 정치인재를 양성치 않았고 그 후유증을 톡톡히 치르고 있는 모습이다. 각 당마다 나라를 이꼴로 만든 장본인들인 5·6공 세력과 YS 사람들이 그대로 앉아 분장만 바꾼채 '3김청산'이니 '정권교체', '세대교체'등으로 목청을 돋우고 있다. 후보차별화가 안되는 상태에서 공허한 공약만 남발하고 있으니 우리는 무슨 기준으로 표를 던져야 될는지 막막하기만 하다.

그래서 이번 대선전(大選戰)은 '최선'의 후보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최하(最下)가 아닌 차하(次下)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한탄의 소리도 들린다.

상황은 급박한데 선택의 여지가 없는 카드를 들고 있는 이 백성들의 참담한 심경을 정치인들이알고나 있는지. 오늘도 종이 꽃가루 뒤집어 쓰면서 세불리기에 여념이 없는 세후보에게 '나라가없으면 대통령 자리도 없다'는 평범한 사실을 귀띔해 주고 싶은 심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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