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정한영)-팍타 순트 세르반다

'팍타 순트 세르반다'.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라는 의미의 오래된 로마법 원칙이다. 한번 약속을했으면 구구한 핑계나 황당한 궤변을 늘어놓지 말고 반드시 약속을 지킬 것을 요구하는 명제다.물론 금세기에 와서 계약의 기초가 된 사정이나 조건이 현저하게 변경된 경우에는 계약의 효력이영향을 받는다는 소위 사정변경의 원칙에 의해 약간의 수정을 받긴 했지만 '팍타 순트 세르반다'의 원칙은 여전히 인류의 법감정을 지배하고 있다. 인간의 발길 닿는 곳 어디든 약속위반은 존재한다. 인간이 가진 부조리성과 불완전성 때문이다.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요즘 우리들은 약속을너무 쉽게 하고 너무 쉽게 팽개치고 있다.

필자는 30년전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던 이야기 하나가 준 감동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매로스라는 사람이 반역죄를 저질러 사형집행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고향에서 누이가 결혼식을올리게 되자 그는 왕에게 결혼식 참석을 위한 일시 귀향을 청원하였다. 왕은 매로스의 가장 친한친구를 대신 감옥에 가두되 만약 사형집행시간까지 돌아오지 않으면 친구를 사형집행하겠다고 하였다.

그는 집행시간이 임박해도 나타나지 않았다. 왕이 친구를 사형집행하려는 순간 매로스가 기진맥진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돌아오는 길에 강도를 만나고 홍수도 만나는 등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넘기고 간신히 제시간에 도착한 것이었다. 죽음 앞에서도 약속은 지켜졌다. 목숨까지 담보로 제공한 우정과 죽음을 무릅쓴 약속이행에 감동한 왕은 매로스의 형집행을 면제해주었다. '강도 때문에… 홍수 때문에…'라는 핑계를 대며 약속을 어겼더라면 둘다 죽음을 면키 어려웠을 것이다.정치인은 곱건 밉건간에 국민에게는 교과서와 같은 존재다. 국민 앞에 금석같은 약속을 했다가바로 코 앞에서 손바닥 뒤집듯 약속을 팽개치는 정치인들, 우리 후손들이 읽게 될 잘못된 교과서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 같아 심히 걱정스럽다.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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