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유산에 철쭉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향적봉에서 남덕유로 가는 능선길. 수만평의 덕유평전에 붉은 철쭉빛이 안개처럼 천지를 덮고 있다.
확트인 조망. 멀리 계룡산, 지리산, 반야봉, 가야산, 금오산이 사방을 사위하는 그곳. 꽃에 묻힌 산길을 따라 걷는 것이 무척 생경스럽다.
고산의 바람과 추위를 견뎠을 철쭉. 그러나 꽃밭의 안온한 맛이 없는 것은 왜일까. 지리산노고단에도, 소백산 비로봉에도 철쭉이 흐드러졌건만 유독 덕유산에서 더욱 처연해지는 것은 왜일까.
덕유산은 장장 1백리길의 대간(大幹)을 이루며 영호남을 가르는 덕유연봉의 주산(主山)이다.삼봉산(1,254m)에서 시작해 수령봉(933m), 대봉(1,300m), 지봉(1,302m), 거봉(1,390m), 덕유평전(1,240m), 중봉(1,594m)을 넘어 향적봉(1,614m)에 올랐다가 다시 남덕유로 이어지는 준령이다. 고봉을 거느리고 골마다 기기묘묘한 계곡을 만들어 철마다 신비경을 이루는 명산이다.
10억년전 선캄브리아기에 우뚝 솟아 육지를 만들고, 소백산맥의 허리를 만들었던 덕유산. 그덕유산이 '두얼굴의 산'이 되고 말았다.
덕유산의 정상 향적봉엔 다른 명산의 정상과는 판이한 정경이 펼쳐진다. 아기를 업은 아낙,초등학생들, 아슬아슬한 짧은 치마의 아가씨까지. 구천동에서 백련사까지 4.2㎞, 백련사에서향적봉까지 2.6㎞의 힘든 코스를 '견뎠을' 등산객의 모습은 아니다.
개발이란 미명아래 만들어진 무주 리조트의 곤돌라 덕이다. 이 곤돌라는 13분만에 설천봉에사람을 내려놓는다. 그리고 20여분만 걸어 올라가면 향적봉이다.
아니나 다를까. 덕유산장(산장지기 허의준)에서 실랑이가 이어진다. "아줌마, 나물캔다고 주목을 밟으면 어떡해요""그게 주목인지 어떻게 알아요""아, 글쎄 아줌마 같은 사람이 있으니산이 망쳐진다니까요""왜 나만 갖고 그래요"··. .
정상 5천여평에 조성된 주목복원지에 나물 캐러간 등산객이 어린 주목들을 건드린 모양이다. 여유로워야 할 산행, 그것도 정상에서 펼쳐지는 정경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처절'한모습이다. 곤돌라로 나물 캐러오는 아줌마들이 하루에도 수십명이나 된다고 산장 관계자가귀띔한다. '급행길'이 빚은 훼손현장이다.
"쯧쯧쯧" 혀를 차던 한 등산객이 "덕유산에서 가장 높은 곳이 어딘지 알아요?"라고 묻는다.당연히 향적봉 바위꼭대기 아니냐고 답하니 고개를 저으며 손으로 통신용 중계탑을 가리킨다. 얼추 봐도 20~30m는 더 높을 것 같았다. 옆에 사람은 "그래도 향적봉 바위꼭대기에 세우지 않아 다행"이라고 빈정거렸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삼공지구(구천동)의 계곡쪽은 아직 옛모습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다.무주구천동에서 나제통문을 지나 36㎞에 걸친 구천동계곡. 기암괴석 사이로 흐르는 옥수(玉水)와 써늘한 냉기가 초여름의 무더위를 씻어준다. 구천동계곡은 물이 급경사를 이루고 뱀처럼 꼬불꼬불 흐르기 때문에 곳곳이 아름다운 풍경의 극치를 이룬다. 이름하여 33경.큰 바위가 있으면 대(臺)요, 물이 떨어지면 폭(瀑)이고, 고이면 소(沼)고 담(潭)이다. 학소대함벽소 가의암 추월담 만조탄 수심대 월하탄 비파담 안심대 명경담 구월폭포··. . 맑은 계곡물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것이 '계곡'이란 이름으로 뭉뚱거려 말하기엔 너무나 아름다운 풍치다.
'덕유산의 두 얼굴'.
무주리조트가 있는 설천단지는 '별세계'다. 스키숍 콘도 방갈로 파크 레포츠클럽등 외래어상호가 난무하고, 예쁜 셔틀버스에 건물들도 모두 스위스풍이다.
그러나 산의 모습은 말이 아니다. 산정상에서 내려오는 스키코스가 흡사 이발기로 머리를밀어놓은 모습이다. 곤돌라 리프트의 지주철탑, 여전히 파헤치고 있는 불도저의 굉음, 즐비한 음식점들, 수만평의 주차장. 가공할 산얼굴이다.
문명과 원시의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산, 인간 몸부림과 자연의 여유로움이 함께 하는 산, 덕유. 태백에서 시작해 소백산맥의 허리까지 오면서 느끼지 못한 안타까움이 발끝에 채인다.지리산을 종주하고 덕유산을 찾은 한 등산객이 산장에서 몇번이고 내뱉은 말이 곱씹힌다. "참 별난 세상이여, 별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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