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목요칼럼 세풍-문화·예술 뒷걸음질 지양을

국제통화기금(IMF)의 찬바람은 우리의 삶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 그 끝을 간절히 바라고 기다리는 우리를 여전히 낭떠러지 앞에 서 있게 한다. 그중에서도 역사의 흐름과 함께 더욱높고 깊게 발전해야 할 문화·예술이 가장 심한 타격을 받고 있는 듯이 보인다.경제 위기가 계속되면서 문화·예술인들은 앞으로 나아가기는 커녕 제자리걸음도 못해 되레뒷걸음질하는 상황이다. 특히 창의성을 가장 큰 덕목으로 하는 문화·예술이 변두리에서 다시 변두리로 밀려나는가 하면,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치스러운 것 쯤으로 치부되기도 한다.그 결과 느닷없는 '복고 바람'이 불고, 문화·예술의 향수층 뿐 아니라 창작층까지 그런 바람에 휩쓸리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사회전반 거센 복고바람

대중가요에서 먼저 불기 시작한 복고 바람은 TV 연속극과 연극으로 이어지고, 패션·광고·음식문화에까지 확산돼 이 시대의 주된 흐름으로 자리매김하게 될까 우려된다. 궁핍했던시절을 되새김질하는 드라마, 향수를 자극하며 눈물을 쥐어짜는 신파극과 악극들, 너덜너덜한 옷가지들, 기억의 저편으로 밀려났던 장면들로 재구성된 광고들은 우리를 타임 머신에태우고 과거로 되돌려놓은 느낌마저 안겨준다.

그렇다고 복고 바람이 무조건 나쁘다는 얘기는 아니다. 추억은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그 향수와 추억은 우리의 삶을 위무해주며, 그 위안은 또다른 희망과 비전을 갖게도 해주기 때문이다. 갑작스런 경제 위기로 명예퇴직하거나 정리해고로 직장을 잃은 사람들에게, 빚에 몰리며 어렵게 사업을 꾸려가는 사람들에게, 남편의 실직으로 힘들게 가정을 꾸려가는 주부들에게 추억과 향수는 위안이 되고 보약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 우리 문화·예술계의 복고 바람과 과거지향적 향수를 자극하는 바람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얼마 전까지만도 유치하다고 여겼던 신파극이 수많은 관객을 눈물바다로몰아넣고, 수십년 전의 대중가요들이 다시 인구에 회자하는 분위기는 아무래도 달갑지는 않다.

향수병 걸려 눈물만 흘려

우리는 지금 눈물샘을 자극하는 향수병에 걸려 있어서는 안된다. 그 덫에 걸려 문화·예술이 높고 깊은 데로 나아가지 못하고 과거로 회귀하는 퇴행적 현상은 반드시 경계되고 지양돼야만 한다. 복고 바람이 문화의 중심까지 파고들어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주도하게된다면 문제는 심각해질 수 밖에 없다. 문화·예술이 더욱 높고 깊은 데로 나아가고, 우리의삶을 한층 고양시키며, 사회의 발전을 이끄는 힘으로 작용하려면 복고 바람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바람이 불어야 하기 때문이다.

복고풍의 문화현상은 분명히 위기의 현실을 정면으로 벗어나려는 의지의 소산은 아님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어둡고 무거운 현실을 쉽게 벗어나게 하는 안이한 방법이 바로 과거에로의 회귀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런 도피주의적인 현상이 문화를 주도한다면 우리의 내일은 암담해질 수 밖에 없다.

새로운 창의력 발휘할 때

우리는 지금 과거로 회귀할 것인가, 어려운 현실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새로운 시대를 창출할 것인가 하는 갈림길에 서 있다. 문화·예술인들은 어렵더라도 강인한 의지로 후자의 길을 걷고, 사회 전반의 분위기도 그런 노력을 아끼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이위기의 시대는 오히려 기존 문화가 안고 있던 거품들을 걷어내고, 그런 터전에서 보다 새로운 창의력에 불을 지펴 한층 높고 깊은 문화를 이끌어낼 문화·예술인들을 필요로 하고 있다.

지역에서도 백화점·통신업체·은행 등이 경영난으로 문화사업기구·문화재단·문화공간 등을 없애거나 다른 용도로 바꿀 움직임이라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정부의 문화정책 당국이나기업체들의 보다 미래지향적인 시각과 발상의 전환도 문화·예술인들의 자구 노력과 함께절실하게 요구되는 이즈음이다.

이태수(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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