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컴 ' ㅎ.ㄴ글' 사업포기 의미

' ㅎ.ㄴ글 대신 korean'

15일 발표된 한글과 컴퓨터사의 'ㅎ.ㄴ글'사업포기는 90년대 국내 소프트웨어 업계 최대의사건으로 불릴 만큼 업계와 사용자들에게 충격을 주고 있다.

이번 제휴는 경영난 타개를 위해 마이크로소프트(MS)사로부터 1천만~2천만달러를 유치한다는 조건이 붙긴 했지만 사실상 MS라는 거대자본 앞에 국내 소프트웨어업계가 '항복선언'을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국내 워드프로세서 시장의 70%를 차지해온 ㅎ.ㄴ글이 사라짐으로써 그동안 ㅎ.ㄴ글, 훈민정음, MS워드 등 3개 워드프로세서가 벌여온 치열한 경쟁은 MS의 '시장지배'로 막을 내릴전망이다.

이는 곧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문자로 인정받는 한글의 컴퓨터 표기에 대한 권리를 미국에게 송두리째 넘겨주게 되는 셈이다. 또한 연간 2백억원에 이르는 국내 워드프로세서 시장이장악됨에 따라 우리 글을 쓰고도 미국에 막대한 로열티를 지불해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빠지게 된 것이다.

한컴이 경영난에 빠지게 된 원인 역시 곱씹어볼 일로 지적된다. 한컴은 국내 벤처기업의 표본이라 할 만큼 성장을 거듭해왔으나 IMF로 경영난에 직면하자 투자자를 구하지 못해 결국은 '적'에게 '안방'을 내주고 말았다. IMF 탈출의 지름길이 벤처기업 육성이라고 떠들면서도 실질적인 지원에는 둔감했던 정부 정책의 허점을 그대로 보여준 사례다.

소프트웨어 불법복제 관행도 한컴의 실패에 큰 원인이 됐다. 사용자들의 의식변화는 물론법적 장치 등이 보장되지 않는한 제아무리 뛰어난 소프트웨어라도 시장에서 장기간 살아남기 어렵다는 사실이 입증된 셈이다.

여러가지 이유에도 불구하고 '빌 게이츠에 맞선 한국의 빌 게이츠'라 불리던 한컴 이찬진사장은 바로 '빌 게이츠'에게 국내시장을 내맡겼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15일 오후부터 각 PC통신망에는 네티즌들의 통탄과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서명운동, 모금을 비롯한ㅎ.ㄴ글 살리기 운동 제안과 함께 MS제품 불매운동 의견이 또다시 불거지고 있다.공정거래위에서 불공정성 검토에 들어가긴 했지만 ㅎ.ㄴ글의 시장퇴출은 기정사실이 됐다. 'ㅎ.ㄴ글'이 단순한 워드프로세서가 아니라 오랫동안 국내 컴퓨터 사용자들에게 무한한 자부심과 성공의 메시지를 주어왔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의 파장은 예상보다 훨씬 크고 장기화될것으로 보인다.

〈金在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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