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소백산맥-경남 산청

높고 험한 산들이 가도 가도 막아서는 곳. 경남 서북부에 위치한 산청군은 북으로 거창군과접해있고 동으로 합천·의령군, 서쪽으로 함양과 하동군과 이어져 있다. 남도 제일의 명산지리산이 서쪽을 막아서고 동으로는 합천군과의 경계지점에 황매산이 버티고 있어 이래저래산중세계다.

소백 줄기가 마침내 용틀임하는 지리산. 그 주봉인 천왕봉을 위시해 제석봉, 연하봉, 촛대봉등 해발 2천m에 가까운 고봉들이 대부분 행정구역상 산청군에 속해 산청땅이 어떤 곳인줄단박에 알 수 있다. 옛 왕조의 서러운 흔적과 숱한 명찰, 거유(巨儒)의 발자취가 골골이 자리잡고 있는 산청땅에 들어서면 마음마저 풍요로워진다.

함양과 인접한 금서면 화계리. 왕산자락에 자리잡은 한 유적은 마치 수수께끼처럼 우리에게다가선다. 가락국의 제10대왕이자 마지막 왕인 구형왕의 능으로 알려진 거대한 돌무덤이다.경사진 언덕에 계단식으로 잡석을 쌓아올린 이 돌무덤은 방형의 단이 모두 일곱 층계로 마치 피라미드를 연상케한다. 무덤의 주인공이 과연 왕인지,누가 수많은 돌을 쌓아 놓았는지…. 수수께끼는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촘촘히 어깨를 맞대고 있는 돌들만 그 사연을 알고 있을뿐. 4백92년동안 지속된 금관가야의 임금 양왕(讓王·구형왕). 그의 증손자인 신라김유신장군의 활터가 바로 이 곳에 있어 두 사람의 관계에서 돌더미의 실체를 어렴풋이 더듬어볼뿐이다.

양사방에서 뻗어나온 산줄기로 산청에서는 번듯한 땅을 찾기 힘들다. 이 비좁은 땅에서 농사를 지어 먹고 살아온 산청사람들은 더러 누에를 치며 생계를 꾸려왔다. 하지만 산청은 과히 우리나라 의류혁명의 메카로 불릴만큼 역사적인 사건이 비롯된 땅이다. 면화(綿花). 문익점선생이 고려 공민왕때 처음 원나라에서 목화씨를 가져와 뿌린 곳이 바로 산청이기 때문이다.

단성면 사월리 배양마을. 면화시배지인 이곳에서 퍼져나간 목화씨가 한반도 사람들에게 두루 무명옷의 혜택을 주었다. 무명옷이 있기 전에는 명주나 삼베, 짐승의 털가죽이 전부였으리. 훗날 산청사람인 도학자 남명 조식(曺植)은 농사를 시작한 중국의 후직에 견줄만하다며문익점에게 찬사를 보냈다.

지리산의 넓은 품은 목화가 잘 자랄수 있는 토양이 될뿐아니라 차(茶)나무를 키워내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산청군의 남쪽인 시천면 반천리 고운계곡. 산청군내 유일한 야생차밭이 있는곳이다. 고운계곡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명산을 두루 다니며 은둔해온 최치원선생이지리산에 칩거하면서 일대에 차를 뿌렸다는 얘기가 구전돼와 산청 차의 기원이 손에 잡힐듯하다.

곱게 손질된 하동, 보성의 대규모 차밭과 달리 경사가 심한 언덕배기에 자리잡은 산청의 차밭은 비료등 인공이 가미되지 않은 자연그대로 잎차들이 수확돼 혀끝에 전달되는 맛이 다르다. 이곳의 작설차는 비료를 주지않아 많이 마셔도 입이 마르지 않고 향이 강한 것이 특징.수확량은 대부분 차밭이 평균 연 1천통안팎으로 적게는 1만통, 많게는 5만통까지 달하는 하동의 차밭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동안 이곳 반천리 주민들은 대부분 밭농사에 매달려오다 불과 몇년전부터 차농사에 눈을 떴다. 현재 40여가구의 절반정도가 차농사를 짓고 있어 소득증대에 한몫하고 있다.

"일대에 무성한 대나무를 자르고 나면 어김없이 차나무가 올라와 4년전 이곳에 정착했다"는금로제다원의 이근창씨(62). 산청 야생차밭에서 수확되는 차는 비료를 주지않아 차의 질이들쭉날쭉하지 않고 고르다고 소개한다. 또 차잎을 비비는 방법도 기계식이 아니라 일일이손으로 비벼내 다른 곳과는 다르다. 비료를 준 차는 손으로 비빌 경우 손바닥이 노랗게 변색된다는게 그의 설명. 기계비빔은 입자가 곱고 보기는 좋지만 쇠비린내가 나 거부감을 준다고 이씨는 말했다. 특히 차를 비빌때가 되면 도학에 심취해 있는 이씨처럼 대구,부산등지에서 온 도반(道伴)들이 모두 모여 기를 불어넣으면서 차를 비벼내기 때문에 색다른 맛이느껴진다.

산청 차밭의 또 다른 특징은 윤작이다. 매년 차를 따내는게 아니라 한해 걸러 수확한다. 그래야 질좋은 차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차나무 한그루당 수확량도 한정돼 있다. 그루당50g이 가장 적당하다는 이씨는 많이 따낼 경우 질과 향이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고운계곡 산청차밭의 특징은 곡우전에 수확하는 '우전'은 차잎을 따기 시작한지 15일이내에수확을 끝낸다. 보름을 넘어서면 잎이 퍼지고 탄력이 줄어들어 질이 크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지리산의 힘찬 기가 땅으로 내려오는 길목에 선 산청. 삼수갑산에 비교될만큼 산골오지이지만 소백산맥의 큰 덕이 골고루 퍼져나와 새로운 땅을 기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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