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 섬유수출 전진기지를 가다-두바이

3년전 한 컨테이너에 8만달러하던 폴리에스테르 직물이 지금은 CIF가격(운임·보험료 포함 수출가격)으로 고작 4만5천달러에서 5만달러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바이어들은한 컨테이너분 폴리에스테르 직물을 수입하면서 1만달러짜리 자동차를 끼워달라고 합니다중동의 '홍콩'으로 불리는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의 한국인 직물에이전트 주상수사장은 인도인 바이어들이 해도 너무 한다 며 불평을 터뜨렸다. 주사장은 이어 모국 업체들이 제값을받지 못할 때는 가슴이 아프다 며 바이어와 직물수출업체 사이에서 에이전트들이 겪고있는고충을 털어놓았다.

그러나 바이어들이 아무리 값을 후려쳐도 대구·경북지역 직물수출업체들은 오더(주문)를얻지못해 안달이다. 홍콩특수가 사라진 뒤 지역 섬유수출업체들은 마치 불나방처럼 두바이로 두바이로 몰려들고 있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두바이무역관 김영철관장은6월들어 우리 직물수출업체 직원들의 두바이 출장이 3~4배는 늘어난 것같다 고 전했다. 출장자들이 늘었다는 건 그만큼 어렵다는 걸 반증한다. 심지어 두바이를 거쳐간 출장자가 다른 지역을 둘러본 뒤 다시 두바이를 찾는 경우도 흔하다고 두바이 섬유수출관계자들은 전했다.

지역 섬유수출업체들은 두바이 시장상황이 이처럼 악화되자, 상도의를 걸레 팽개치듯 내던지고 있다. 다른 업체의 인기 직물을 베껴 함께 망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구미의직물업체 을화는 '키위'라는 제품으로 두바이 시장에서 히트를 쳤다. 1달러 미만의 저가시장인 두바이 직물시장에서 야드당 2달러 90센트를 받고 수출했다. 이에 대구의 ㄷ업체가 재빨리 '키위'를 베껴 두바이 시장에 뛰어들었고 다른 지역업체들도 가세했다고 두바이의 섬유수출 관계자들은 밝혔다. 이 때문에 '키위'의 수출단가는 1달러 50센트로 폭락했다. 두바이의 모 직물에이전트는 이와 관련 대구사람들은 거짓말과 카피를 너무 잘한다 며 지역의모 업체가 다른 업체의 인기직물을 베끼기 위해 견본을 잘라달라고 요구했으나 차마 그럴수 없어 거절한 적도 있다 고 귀띔했다. 여기에 약삭빠른 일부 인도인 바이어들은 마켓 클레임을 걸어 수출대금 지불을 거절하고 있다. 수출단가가 계속 떨어져 손해를 볼 위험이 큰탓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외환위기를 겪고있는 동남아 각국도 두바이시장으로 밀려들고 있다. 이처럼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수출단가 역시 급속도로 떨어지고 있다. 두바이 바이어 리갈 트레이더스의 대표 라주 쉬로프가 제시한 폴리에스테르 직물의 수출단가표는 두바이 시장의 어려운 사정을 일목요연하게 보여 주었다. 최근 몇달새 저가품은 대부분 야드당 20~30센트씩 떨어졌으며 폴리 벨벳은 3달러선에서 2달러 30센트로 떨어져 있었다. 야드당 평균단가가 60센트에서 1달러 미만인 두바이 시장에서 지역의 수출직물값이 이렇게 계속 떨어진다면 채산성은물어볼 필요도 없다.

더욱이 재수출 위주인 두바이 주변시장 상황 역시 좋지않다. 이라크와 이란이 미국으로부터경제제재를 받고 있는 터에 인도와 파키스탄이 핵실험과 관련 경제제재 대열에 합류했다.또 CIS 국가들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구매력이 떨어지고 있다. 터키 역시 밀수단속을 강화, 두바이의 밀무역이 타격을 받고있다. 주변시장 상황이 악화되자 두바이의 인도인 바이어들의 부도도 속출하고 있다. 인도인 바이어들의 모임인 텍스마스(TEXMAS)에 신규 진입한바이어들이 마구잡이 투매에 나서 시장질서를 흐트리고 있는 때문이다. 이에 대해 동국무역이동헌 두바이 지사장은 한국인과 인도인은 모두 참을성이 부족한 점이 닮은 것같다 며 쓴웃음을 지었다.

여기서 두바이에 대해 알아두는 게 지역 섬유수출시장으로서 두바이 시장을 아는데 도움이될 듯 싶어 간략하게 소개한다. 두바이는 아랍 에미리트 연합 공화국을 구성하고 있는 7개부족국중 두번째로 크며 수도가 위치한 아부다비가 가장 큰 부족국이다. 그래서 아부다비족장이 대통령직을, 두바이 족장이 부통령 겸 총리직을 세습한다. 영국의 식민지였으며 1971년 독립했다.

영국 식민지였던 탓에 영어는 아랍어와 함께 이 나라의 공용어. 관공서의 공문서는 물론 도로 표지판에도 아랍어와 영어가 함께 쓰여 있다. 따라서 아랍어를 몰라도 영어만 제대로 구사하면 사는데도 일하는데도 전혀 지장이 없다. 같은 영국 식민지였고 중개무역항인 홍콩보다 두바이에서 영어가 더 잘 통한다·(실제로 홍콩인중 영어를 제대로 구사하는 사람은20~30%에 불과하다)

1958년 아부다비에서 원유가 발견되기 전까지만 해도 두바이는 진주조개잡이가 주수입원일정도로 찢어지게 가난했다. 애옥살이 살림이 펴지기 시작한 것은 원유가 쏟아지면서부터. 두바이는 아부다비의 원유 수출창구가 되면서 원유 중개항으로 발돋움했다. 두바이산 원유값이 영국 북해산 원유와 함께 국제유가의 지표가 될 정도로 걸프지역 원유가를 좌우하게 됐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단순한 원유중개 무역항에 지나지 않았다. 두바이가 재도약의기틀을 다진 것은 걸프전(89~91년)이었다. 이라크 재수출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쿠웨이트와걸프지역 금융을 맡고 있던 바레인이 걸프전의 후유증으로 영향력이 쇠퇴하면서 두바이가그 역할을 떠맡은 것. 지금은 사우디아라비아 젯다항의 물동량을 훨씬 능가하는 중동 제일의 중개무역항으로 발전했다. 중부와 서부 아프리카를 비롯 러시아 등 CIS제국, 인도·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 등 서남아시아, 터키와 폴란드 등 동구권을 망라, 두바이의 재수출 국가는 1백60여개국에 달한다.

두바이가 홍콩과 싱가포르처럼 중개무역항으로 발전한 것은 전적으로 두바이 정부가 노력한덕분이다. 두바이는 4% 수입관세를 물리면서 재수출 물량에 대해 관세환급을 해주고 있다.관세환급도 매우 신속히 이뤄져 신청하고 하루만 지나면 환급된다. 또 외국인들의 법인설립과 부동산 취득에 제한을 하고 있지만 번 돈은 아무리 많아도 반출에 지장이 없을 정도로개방정책을 펴고 있다. 인도인들이 두바이 직물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것도 다른 중동국가들과 달리 두바이 정부가 개방정책을 펴고있는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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