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폭우가 삼킨 한가위

미친듯한 폭우가 경북 중.북부 지역을 할퀴고 간지 한달여. 집과 농경지를 잃고 고통의 나날을 지내고 있는 수재민들은 추석이 다가오면서 더욱 깊은 슬픔에 잠겨들고 있다.추석빔을 마련하기는 커녕 제사나마 제대로 지낼 수 있을지 걱정이태산이다.

집을 잃고 노인회관.학교.교회나 천막에서 생활하고 있는 이재민은 최대 피해지인 상주지역만 36가구 98명. 대부분 노인들인 이들은 제대로 누울 자리가 없는 터라 이미 자녀들에게이번 추석에는 귀향하지 말라고 '눈물의 전화'를 해놓았다.

벽은 슬레이트, 문은 발, 지붕은 천막으로 떠내려간 집터에 오두막을 짓고 생활하는 은척면하흘리 안윤순할머니(74)는 "서울과 대구에 사는 6남매가 고향을 찾아도 집도 없고 쌀도없어 이번 추석을 잊기로 했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할아버지는 자갈밭이 된 논에 나가고혼자 텐트에서 점심을 짓던 김분돌할머니(75)는 "한달여 텐트 생활에 지쳐 제사를 지내지못해도 조상이 이해할 것"이라며 모래밭으로 변한 집터를 바라보며 한숨을 쏟았다.이들의 사정은 그나마 나은 편. 내서면 우산분교에서 생활하는 조정열할머니(70)는 남편 묘가 떠내려가 성묘조차 하지 못한다. 눈물이 마른지도 오래지만 자녀들이 추석이랍시고 찾아오면 눈물 샘이 다시 터질지도 모른다.

한마을이 몽땅 물에 잠겼던 구미시 광평동 주민들도 다가오는 추석이 고통스럽긴 마찬가지.동네 노인들이 둘만 모이면 조상 모실 걱정부터 한다. 병풍.자리.제기.젯상.향로 등 새로 마련해야 할 것이 하나 둘이 아니다.

윤지은씨(77) 부부는 물에 완전히 무너져 내린 아래채는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그동안 고이보관해온 6대조 선조의 고서 등 유품을 물에 떠내려보내 조상에게 꾸중들을 일이 큰 걱정.맏손자가 겨우 유품 몇가지를 건졌으나 훼손이 심하다.

광평동 주민 5백30 가구 1천5백50명중 집 1백84채가 물에 잠기고 13채는 완전히 무너졌다.이재민 1천1백60명은 덮을 이불도, 갈아입을 속옷도, 가전제품도 변변찮아 추운 겨울도 걱정이 크다.

한때 구호의 발길이 이어졌지만 이젠 사람들의 관심조차 멀어지고 있다. 피해보상은 감감무소식. 관청에서는 "노력하고 있다"며 지원을 기다리라는 말만 되풀이할 뿐.쥐꼬리만한 복구비라도 추석전에 지급해주면 좋을텐데…. 이젠 늑장행정이 원망스럽다. 〈朴東植.李弘燮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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