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달의 문학-현실주의 시의 명백한 후퇴

당대 삶의 조건 반영 문학작품은 어떤 식으로든지 당대 삶의 조건을 반영하게 마련이다. 국내의 여타문예지에서도 IMF와 문학의 관계를 특집으로 다루는 등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진단은대부분이 지극히 추상적이었다. 가령 가난은 위대한 문학 산출에 기본적인 조건이라거나,어려울 때 일수록 삶의 진지성에 몰두하자는 등의 의례적인 진단으로 일관했다. 문인들자신의 발등에는 불이 떨어지지 않아서 그런지 지식인이라서 겸양을 보이는 건지 김유정이보여 주었던 가난에 대한 혹독한 외침이나 권정생이 보여주는 가난의 인간주의(?)같은것들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20여종의 문예지에 실린 수백 편의 시들을 대강 훑어 보았다. 그 결과 가파른 삶의 조건을극복하고 미래에 대한 전망을 보여주는 현실주의 시들의 명백히 후퇴를 확인했다. 지난80년대의 현실에 비해 외양이나 실제 내용에서도 '오늘, 이곳의'현실이 별로 나아진 바가없을 텐데 왜 이렇게 문학은 후퇴했는가? 이것이 시를 읽는 동안 내내 의문이었다.두 중견 시인의 시를 숙독했다. 김명수는 '창작과 비평'과 '실천문학' 가을호에 각각 3편의시를, 이성복은 '문학과 사회' 가을호에 4편, 여타 월간지 9월호에 각각 1편씩의 시를발표했다. 둘 다 오랜만의 시 발표여서 관심을 끌었다. 두 사람의 시 12편 가운데 바다와관련된 시가 무려 6편이 되고 이성복의 '비'와 '강'까지 합하면 물의 이미지를 빚어낸 시가8편이다. 어떤 의미가 있을까?

바다는 생명·활력의 이미지

바다가 시에 빈번하게 나타난 것은 여름을 앞세운 가을이라는 계절 탓이거나

거주지(김명수 시인은 영덕에 살고 있다) 때문이라기보다는 차라리 IMF 파편을 맞고실직하여 할일없이 바닷가를 배회하거나 자살하기 위해 바다를 찾은 사회 경제적 배경때문인지 모른다. 바다(물)의 이미지는 생명의 이미지요 활력의 이미지다. 이렇게 볼 때시인들이 바다를 시의 소재로 올리는 것은 피폐하고 쇠락한 현실에서의 절망감에 대한치유를 바다의 싱싱한 이미지에 기대고 있는지 모른다. 나는 이들의 시를 이런 방식으로이해했다.

실제로 이성복은 오래 바라보면 바다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다 지문이 문드러진 늙고무딘 손처럼 지금 우리가 떠/나가도 명멸하는 빛이 바다의 얼굴에 남아 있다는 것은 얼마나서러/운 ('변산' 9월호)지를 말하고 바다는 그저 푸른 나이론 치마를 펼쳐놓은 듯 가볍게/떠 있었다 그안에 어떤 무거운 몸이 나른히 쉬고

있었지/만 ('안면'9월호)이라고 이야기하여 '표정이 없는 바다' '그 안에 어떤무거운 몸이 나른히 쉬고 있는' 바다를 이야기 하고 있다. 이성복의 바다는 삶에 지친자의시각으로 바라보는 바다이다. 이성복은 동양적 사유가 깊은 시를 쓰는, 그 때문에 탈현실의난해한 시를 쓰는 시인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번에 발표한 그외 시에서는 현실을 대하는조심스런 시작의 변화를 읽을 수 있었다.

위기극복과 희망의 모태

김명수가 바라보는 바다는 위기 극복의 희망의 모태로서 바다이다. 가령 가을바다 만리밖 잔파도 일어//먼바다 아스라이 살아나는 날//저 바다 고요한 수평선 위에//내가 심은 한그루, 푸른 소나무 ('바다 위의 소나무' 가을호)인용시에서 김명수는현실의 간난을 만리 밖 잔파도 정도로 여기고 역설적이게도 그 잔파도 때문에 바다가 다시살아난다는 인식을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 끝에 그는 결코 쓰러질 수 없는 푸른소나무 한 그루에 대한 믿음을 드러내고 있다. 거친 파도가 명사공을 만드는 것처럼,인생도 현실도 고통에 의해서 더 깊고 성숙해질 수 있다는 잠언을 이 시는 가르치고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사람의 시는 시적 형성화의 직접성 회피라는 측면에서 현실주의시의 후퇴라는 혐의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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