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유소에 기름을 넣으러 갔다. 차 유리를 내리고 "가득 넣어요"하고 주유원에게 주문을 한다. 그런데 이 젊은 주유원은 "풀로 넣어요?"하고 반문을 한다. 그렇다고 했더니 이번에는 주유기를 붙들고 있는 동료에게 "만땅 넣어"하고 전한다. '가득'과 '풀'과 '만땅'. 한 자리에서 동의어로 쓰이고 있는 이 말을 들으면서, 혼란과 슬픔을 동시에 느낀다.
중국어의 영향을 많이 받아온 국어에는 광복후 인구어(印歐語)계통의 언어가 많이 들어왔고, 드디어 한국어, 중국어, 인구어의 3중적 조직을 갖게 됐다. 물론 인류의 역사는 문화 교류의 역사이고,문화가 교류되면 언어는 섞이게 마련이다. 그러나 언어는 그 민족의 얼이 담긴 문화의 결정체이므로 그렇게 간단히 생각할 일이 아니다.
어느 정도의 언어의 섞임은 필요한 일이기도 하지만, 그 정도와 국민들의 정신이 문제인 것이다.그림 전시회에 가 보면 벌거벗은 여자의 몸을 그린 그림을 더러 보게된다. 그런데 그 그림에는 '누드'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누드'는 예술적인 어휘이고, '나체'는 그냥 그런 단어이지만, '알몸'이란 말은 아무래도 점잖지 못하다고 하는 생각 속에 우리 문화에 대한 자기 비하 의식이 담겨있다.
아무 생각없이 외래어 쓰기만 좋아하다 보면 언젠가 우리말 자체를 포기해야 하는 날이 올지도모른다. 그때는 문화의 노예가 되고 드디어는 인간적인 노예로 전락할지도 모른다는 것은 결코기우가 아니다. 윤장근〈소설가.덕원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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