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1일은 우리정부가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지 1년이 되는 날이다. 지난 1년 동안 우리는1만달러 소득에 2만달러 흉내를 낸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소득은 10년전 수준으로 내려앉았고거리에는 실업자가 넘쳐나며 전통적인 도덕과 인간관계마저 파괴되는 혼돈이 우리사회를 뒤덮고있다.
그러나 이같은 고통속에서도 희망의 빛은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희미하긴 하지만 우리경제의맥박은 다시 뛰기 시작했고 1년 뒤에는 회복이 가능할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IMF체제 1년이 가져온 우리사회의 변화상을 살펴보고 새로운 도약이 가능한지를 모색하는 시리즈를 연재한다. 〈편집자주〉
중견기업 과장인 김모씨(39)는 얼마전 고향에 친구 어머니 문상을 갔다가 무거운 마음을 안고 대구로 돌아왔다. 전국 각처에 흩어져 있던 동기생들이 상가에 모였는데 그중 절친했던 친구 10명가운데 8명이 실업자였다. 모두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의 고참 과장이었는데 구조조정의 첫 희생타였다는 것이다. 얼마전 회사의 인력정리에서 요행히 살아남았던 김씨는 친구들의 처량한 모습을보면서 당장은 살아남았지만 언제까지고 구조조정에서 예외가 될 수는 없을 것이란 불안감을 떨치지 못했다.
IMF체제 이후 이같은 '실업의 공포'는 우리사회의 가장 보편적 현상의 하나가 됐다. 지난 9월말현재 실업자수는 1백57만2천명. IMF사태를 맞기 직전인 지난해 10월말의 45만명보다 무려 3.5배나 많은 규모이다. 그러나 아예 구직을 포기해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된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실질적인 실업자는 이보다 훨씬 늘어난다. 고속성장과 함께 창조된 사실상의 완전고용이란 신화가단 1년만에 허물어진 것이다.
그만큼 IMF체제가 우리사회에 미친 파괴력은 엄청났다. 지난 95년 1만달러대에 진입한 국민소득은 올해 6천6백달러(추정)로 하락, 10년전 수준으로 되돌아가게 됐고 이를 반영, 지금껏 감소한적이 없었던 도시근로자가구의 명목소득도 올 1.4분기에 처음으로 감소(2.3%)한데 이어 2.4분기에는 5.3%나 감소했다.
그러나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소득감소폭은 이보다 훨씬 더 크다. 전경련이 설문조사결과에 따르면 월평균 가구소득은 1백85만8천원으로 IMF사태 이전의 2백29만9천원에 비해 25.7%가 줄어든것으로 나타났다.
더욱 큰 문제는 소득수준과 소득감소폭이 반비례하고 있다는 점이다. 통계청 조사 결과 소득수준이 하위 20%에 속하는 부류의 소득은 올 상반기중 14.9%가 감소한데 비해 상위 20%에 속하는계층은 오히려 2.3%가 늘어났다. 사회안정의 기초인 분배균형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소득감소는 소비위축으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산업활동의 공동화를 불러오는 악순환을 낳았다.지난해 4.4분기에 마이너스 0.8%로 처음 감소했던 가계지출은 올 1.4분기 마이너스 8.8%, 2.4분기마이너스 13.2% 등으로 갈수록 감소폭이 커지고 있다. 그 결과는 생산기반의 붕괴. 산업생산은올들어 8개월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이어갔고 지난해까지 80%대를 유지하던 제조업가동률은60%대로 떨어졌다. 공장마다 생산설비의 30% 이상을 놀리고 있다는 얘기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지난 7, 8월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는 근로자들이 생산라인 대신 회사 잔디밭에서 조별로 풀을뽑는 웃지못할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같은 생산 공동화를 막기 위해 정부는 '적정한 소비는 미덕'이란 구호와 함께 소비자금융 확대등 갖은 처방을 써보았지만 움츠러든 소비심리는 꿈쩍도 않고 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니지금 아끼겠다'는 심리 때문에 정부가 아무리 돈을 쓰라고 해도 먹혀들지 않고 있는 것이다.여기에다 금융권의 몸사리기로 인한 신용경색으로 멀쩡한 기업까지 도산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1%대로 올라섰던 어음부도율은 지난 9월 0.3%대로 하락, IMF사태 이전 수준으로 회복됐고 부도업체수도 올초의 3분의 1수준으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올초에는 주로 한계기업이 무너졌지만 최근에는 정상적인 금융지원만 되면 살 수 있는 우량기업이 쓰러지고 있어 문제가되고있다.
그러나 이같은 암울한 상황 속에서도 경제회복의 기미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는 것은 그나마 희망을 갖게 한다. 우선 위기의 원인이었던 외환부문이 정상을 회복해가고 있다. 한때 39억달러까지내려갔던 가용외환보유고는 연말이면 5백억달러를 넘어서고 주요 외환공급원인 경상수지 흑자도3백70억달러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또 총외채에서 단기외채가 차지하는 비중도 30%밑으로 떨어져 그만큼 상환부담도 줄었다.
국내 금융시장과 실물부문의 동향도 고무적이다. 외국자본 유치를 위한 고금리정책으로 한때30%까지 치솟았던 금리는 이제는 7~9% 수준으로 떨어졌고 환율도 달러당 1천3백원 선에서 안정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또 붕괴직전까지 갔던 주식시장은 외국자본의 유입이 활발해지면서 주가지수가 4백선을 회복했다.올들어 60%대를 벗어나지 못했던 제조업가동률은 지난 9월 처음 70%대로 올라섰고 산업생산도 미미하나마 올들어 처음으로 증가세를 보였다.
그러나 이러한 지표상의 호전이 곧 우리경제의 회복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단언하기는 힘들다. 정부의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신용경색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으며 실물부문도 호전의 기미를보이고 있다고는 하지만 정상수준과는 거리가 멀다.
일부에서는 우리경제가 이미 바닥을 지났으며 내년 1.4분기부터는 본격적인 회복세에 진입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는 있지만 장담하기에는 이르다. 우리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세계경제가 내년에도 전반적 침체를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장기적인 경제회복의 관건인 구조조정도 아직 미완성이다. 외국투자자들은 신속한 구조조정을 주문하고 있지만 공공부문 구조조정의 속도와 강도는 기대 이하이고 5대 재벌을 비롯한 기업 구조조정 역시 자꾸 지연되고 있다.
우리는 IMF체제 1년만에 일단 탈출의 실마리를 잡았다. 그러나 탈출의 실마리를 따라 재도약하느냐 아니면 영원히 3류 국가로 전락하는냐는 우리의 노력에 달렸다.
〈鄭敬勳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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