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장-손끝엔 정성 듬뿍 행복한 사랑 나눔

'김장김치에 넘치는 사랑을 담으세요'

편의성을 쫓는 시류에 따라 집안끼리 이웃끼리 모여서 겨울철 반양식 김장을 담는 정취는 찾아보기 힘들게 됐지만 지역사회에서 사랑의 김장품앗이를 하는 곳들은 점차 늘고 있다.

장애인.노약자.환자들이 모여사는 시설원, 수도자들이 모여사는 종교시설, 복지관등에서는 IMF 이후 더 빠듯해진 살림살이속에 올 겨울을 무사히 넘기기위해 김장담기에 분주하다.

바쁜 시간을쪼개고, 솜씨를 나누는 주부들의 손끝에서 손끝으로 전달됐던 김장문화를 간직한 김장품앗이 현장을 찾아본다.

지난 16일 오전 9시. 잠에서 깬 햇살이 겨울초입의 산안개를 물리치고 깨끗한 기운을 불어넣는더불어복지재단 장애인 주간보호센터 뒷마당. 갓바위 가는길에 소담하게 자리잡은 이곳으로 열댓명의 주부들이 찾아온다.

오늘은 김장담기 첫째날. 무려 세접이나 되는 김장을 담그려면 사흘이 걸린다. 하루는 소금에 절이고, 하루는 씻어건지고, 마지막날은 버무리고.... 재료를 준비하는 날까지 합치면 나흘인가.

지난 토요일 이곳에 근무하는 사회복지사 배문열씨가 고향집(경산)에서 배추 접반(1백50포기)을그저 가져오고, 서정희 소장의 지인이 또 접반을 보내오고, 여름내 원생들이 폭우속에 가꾼 배추들도 한자리에 모였다.

무 1백여개는 시장에서 구입했고, 5백m 떨어진 감천사와 이웃 굿집에서커다란 스텐 양푼이와 함지박을 빌려왔다. 원생들에게 실습을 통해 자연의 생명력을 가르치는 서현숙씨(대구시 수성구 을지맨션)가 젓갈을 가져왔고, 마늘은 토종으로 두접 사두었다. 고추도 태양초로 미리 20근을 준비했다.

복지센터내에서는 김장을 담을 곳이 마땅찮아 계곡 위에 자리잡은 원두막에서 담기로 했다. 산바람을 막을 비닐을 치고 산더미처럼 쌓인 배추를 일일이 다듬고 소금을 절였다.

노랗게 속이찬 배추를 골라, 왕소금에 알맞게 절이는게 김장을 성공으로 이끄는 기본. 이정숙. 박성희. 신매성당 레지오단원(단장 김경숙). 전은숙. 이필숙. 이상숙. 이상순. 차광옥. 권은숙. 배미숙등 내일 모레면 불혹을 맞을30대부터 50대에 이르는 주부들이 제가끔 김장을 거든다. 김장 품앗이를 하는 표정들이 그렇게맑고, 행복할 수가 없다.

한쪽에서는 솥을 걸고 국을 끓인다. 배추 절이기는 무려 다섯시간이나 걸려 오후 3시쯤 끝났다.뻐근한 허리를 거머쥐면서도 행복한 웃음을 띠고 집으로 돌아간 주부들은 이튿날(17일) 또다시들렀다. 밤새 잘 절여진 배추를 씻어 건지고, 통마늘을 까고, 고추를 닦아 빻아서 양념을 후렸다.커다란 독을 묻을 자리도 두군데나 팠다.

사흘째(18일) 되는 날, 수성구 지산동에 사는 차광옥씨의 진두지휘로 경험많은 선배주부들이 배추를 양념에 버무려주면 젊은 주부들은 재빠르게 독에 담아 나른다. 박성희 주부는 아들이 수능시험을 치는데도 김장봉사를 마다않았다. 리듬을 타며 배추 버무리기가 끝나자 김치독은 7개로 늘어났다.

김장을 다 담고는 무청과 배추잎을 모아 시래기도 준비했다. 김영희 주부에게 시래기 엮는 법을배운 박성희씨는 '싸부 저리가라'고 할 정도로 노련한 솜씨를 뽐냈다.

"스스로 참여하니 너무 재미있고, 행복했어요" 사흘 꼬박 김장품앗이에 시간을 바친 주부들의 행복한 표정에서 삶의 향기가 느껴진다.

〈崔美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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