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예스맨만 좋아하면

국가경영에 대해 반론이나 소견을 직언하는 상소나 여론전달의 채널이 넓 게 열려 있어야 나라가 잘 돼나갈 수 있다는 우리 선현들의 공론(公論)자유 사상은 일찍부터 싹터있었다. 군신(君臣)간의 언로(言路)를 열기 위한 선비 와 공직사회에서의 소(疏)와 간(諫)은 매우 활발했다.

도끼를 들고 궁전앞에 엎드려 임금에게 직언으로 호소한 독특한 형태의 복 궐소(伏闕訴)같은 것은'직언내용이 마음에 안들면 들고간 도끼로 죽이시오' 라는 결의를 담고 있다.

그만큼 통치자에 대한 직언과 여론 전달에 있어서기개와 소신이 당당했음을 많은 언로쟁취의 역사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러한 공론발전의 자취를 들여다보면 민주적 사고를 가진 성군(聖君)들은 언 로의 개방과 직언을 듣는데 겸허했고 독선에 흐른 군왕들은 언로의 열림을 억제하고 외면했음을 볼 수 있다.

왕조가 끝난뒤 50여년, 제1공화국에서 오늘의 국민정부에 이어오기 까지 역대 정권들의 언로개방에 대한 마인드와 성향은 어떻게 평가되고 있는가 지난 정권은 덮어두고 우선 빅딜과 국회와 관료집단의 비능률성에 대한 비 판을 한뒤 목이 잘린 배순훈장관의 경우를 놓고 생각해보자.

시비의 가름은 먼저 배장관의 발언이 과연 각료의 해임사유로서 충분하냐 아니냐를 가려보 는 데서 출발된다.장관의 발언요지의 하나는 생산가격이 판매가격보다 비싸 게 먹힌다고 하는 삼성자동차회사와 생산품의 95%가 수출돼 외화벌이 효자노 릇을 하고 있는 대우전자회사간의 빅딜은 적절치 않은 것 같다는 얘기였다.

또 하나는'기업에 있을 때는 의사결정을 신속히 할 수 있어 생산성과 능률이 컸었으나 정부쪽에 오니까 국회다 무슨 협회다 해가며 이리저리 시간 끄는 게 많다보니 일이 제대로 풀려 나가지 않는다'는 게 전부였다. 대역죄인이 될 발언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국회문제는 옳은 말이다.

그러나 끝내 목이 잘려 버렸다. 청와대쪽 귀에는 장관의 비판이 대통령이 열심히 추진하고 있는 빅딜 전체에 대한 '건방진 비판'으로 들린 듯하다. 다 시 말해 장관의 소견을 계기로 근로자, 지역시민들의 반론을 진지하게 경청 하고 정부판단에 혹시 잘못된 게 없는지를 겸허하게 짚어보는 아량보다는'어 디 감히 건방지게- '라는 심정적인 인사의 칼부터 먼저 빼든 모습으로 보인 다.

지금 국민정부는 빅딜이든 제2건국이든 교사정년문제든 일단 밖으로 꺼 내놓은 개혁정책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반론이나 말대꾸를 거는 말재기세 력은 자기 정파의 인물까지도 제거해 버리겠다는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 다.

배장관의 경질은 물론이고 보름전 교원정년 60세강행을 위해 반대의견을 가진 국민회의소속 국회상임위 교육위원을 빼내고 찬성의견을 가진 위원으로 몽땅 바꾸겠다고 한 당간부의 발언은 그러한 분위기를 잘 반증하고 있다.' NO-'라고 말하는 사람은 침묵시키고 예스맨들로만 짜모아 정책을 통과시키겠 다는 거라면 일찍이 조광조가 경고했던'言路閉則亂且亡'(바른언로를 막으면 나라가 망한다)이랄 수밖에 없다.

배장관의 빅딜관련 소신발언이 옳으냐 틀 리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그 보다는 정부의 정책에 대해 장관이 고위지도자 와 다른 의견을 가졌고 국회같은 정치권의 비효율성이 신속한 정책수행에 지 장을 주고 있다는 정치개혁 필요성을 용기있게 지적한 충언을 걸어 갈아치워 버린 것은 'NO- '라고 할 수 있는 측근들을 잃는다는 점에서 더 큰 문제가 된다.

어느 조직이든 통치권 주변에 예스맨들이 병풍을 치기 시작하면 반드 시 그 조직은 생명력을 잃는다는 사실을 깨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국 민정부는 귀거슬리는 반론에 좀더 겸허히 귀기울일 필요가 있어 보인다.

金廷吉〈비상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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