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문화의 모태가 된 그리스신화. 이제까지 우리 독자가 주로 접해온 그리스 로마신화는 19세기 미국 청교도 사회에서 성장한 토마스 벌핀치가 오비디우스의 '변신'이나 베르길리우스의 작품을 토대로 정리한 것이었다. 기독교인들은 신화 중 섹스에 관한 불경스런 내용은 삭제하고, 대신 신앙생활을 위한 도덕적 교훈이 될 만한 것을 강조했다. 기독교적 가치관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본 일종의 '거세된 그리스 로마신화'라 할 수 있다.
이태리 유수의 출판사인 '아델피' 편집장인 작가 로베르트 칼라소의 '카드모스와 하르모니아의 결혼'(동연 펴냄)은 20세기 관점에서 새롭게 쓴 그리스 신화다. 그리스 신화 해석에 한 획을 그은 역작으로 평가받는 이 책은 신과 인간의 욕망에 초점을 맞춰 재창조한 그리스 신화다.
'이 모든 것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라는 물음으로 시작되는 이 책은 신과 인간, 특히 여성과의 교섭에 시선을 집중한다. 저자가 본 '이 모든 것'은 불화의 역사다. 그 불화는 처녀를 약탈하거나 희생 제물로 삼으면서 시작된다. 제우스가 왜 에우로페를 유혹했는지, 테세우스로부터 버림받은 아리아드네를 왜 디오니소스가 구출해야 했는지, 또는 여성은 왜 모든 영웅들 앞에 나타나 결국 그들의 삶을 망쳐 버리는지를 밝혀낸다. 저자는 '그 모든 것에는 망각의 욕망이 흐른다'는 말을 인용, 인간의 모든 행위 아래 비극이 잠재해 있음을 탐구한다.
칼라소의 신은 고대 그리스인들이 오랫동안 믿어왔던 무자비한 정의의 집행자가 아니라 단지 힘센 인간이다. 그가 본 신의 영역은 신성하며 지상적이고, 초월적이며 세속적이다. 매혹적이며 무시무시한 올림피아의 신들은 인간을 홀로 내버려두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찌르고, 밀어내고 들어올렸다 버리고 변형시키고 죽인다. 이런 날카로운 패러독스 속에서 칼라소는 현대 무신론자와 고대인을 대비시키기도 한다. 그에게 있어 신은 인간에게 다음 세계에서의 구원에 대한 희망을 주는 것이 아니라, 현재 여기에서의 다양한 삶에 대한 인식인 것이다. 칼라소는 소설속의 인물처럼 신화의 인물을 다룬다. 등장 인물들과 스토리 전개에 독특한 성격을 부여하고, 현대 세계와의 관련성에도 주목해 유령과 같은 추상적인 기독교 세계관을 비판하기도 한다.
이 책은 기독교의 영향으로 성이 배제된 신화나 낭만·모험에 초점을 맞춘 빅토리아시대 번역본과 달리, 2천년전의 이야기가 어떻게 번역되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 다양하고 풍부한 새로운 그리스 신화다.
徐琮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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