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난주 미국 아이오와주에선 공화당 대통령 후보들의 인기투표(straw poll)가 있었다. 무려 열다섯 달이나 이어질 미국 대통령 선거운동이 마침내 시작된 것이다.
아이오와는 작은 주다. 그리고 인기투표는 말 그대로 후보들의 인기를 재는 여론조사에 지나지 않으며, 공화당 전당대회에 나가 투표할 대의원들을 뽑지도 않는다. 거기서 가장 많은 표를 얻은 후보가 실제로 당선된 경우도 드물다. 그런데도 그 인기투표는 세계적으로 큰 관심을 끌었다.
이 사실은 지금 미국이 단 하나의 초강국으로 세계를 이끌고 있으며 미국의 판단과 행동은 세계의 모든 나라들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워 준다. 미국은 이미 또렷하게 모습을 드러낸 '지구제국'의 수도가 됐고 세계적으로 중요한 결정들은 워싱턴이나 뉴욕에서 내려진다. 그래서 누구도 미국 대통령을 그저 다른 나라의 정치 지도자로 여길 수는 없다.
그런 사실이 좋든 싫든, 우리는 그것을 외면할 수 없다. 우리로선 미국이 세계적 문제들을 다루는데 지도력을 발휘해 주기를 바랄 수 밖에 없다. 아쉽게도, 사정은 복잡하다.
위에서 얘기한 것처럼, 미국 대통령은 실질적으로는 세계를 이끄는 정치 지도자다. 그러나 그를 뽑는 것은 미국 시민들이고 다른 나라 사람들은 투표에 참여하지 못한다. 물론 미국 시민들은 주로 후보들의 국내 문제들에 관한 정책들을 살펴서 대통령을 뽑는다. 후보들의 외교정책이나 능력과 같은 사항들은 별다른 무게를 지니지 못한다. 최근에 미국에서 끔찍한 총기 난사 사건들이 잇따라 일어났다는 사정 때문에, 이번 선거에선 총기 규제가 가장 중요한 쟁점이 되리라는 얘기가 나온다. 미국 하원의장을 지낸 팁 오닐의 얘기대로 "모든 정치는 지역적이다(All politics is local)".
바로 여기에 심각한 위험이 있다. 대체로 자신의 국내 정책과 그 성과에 의해 뽑히고 평가되는 처지에서, 미국 대통령이 세계적 문제들에 많은 시간과 정력을 바칠까? 그리고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서 미국이 전쟁이나 대규모 원조처럼 어려운 길을 골라야 하는 처지가 됐을 때, 그가 미국 시민들에게 그 길을 가자고 적극적으로 설득할까? 지상군의 투입이 없이 공습만으로 끝난 '코소보 전쟁'은 그 물음에 대한 답에 또렷하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세계의 이해와 미국의 이해가 합치하지 않을 때, 그런 위험은 당연히 커진다. 그럴 때 미국의 이익만을 추구해서 미국 시민들에게 인기가 높은 대통령이 세계적 관점에선 재앙을 불러올 수도 있다. 우리는 고대 그리스에서 바로 이런 상황을 본다. 페리클레스가 아테네의 지도자였을 때, 그리스 전체는 융성했고 아테네도 가장 힘센 도시국가로 번영했다. 불행하게도, 페리클레스는 아테네의 이익을 그리스 전체의 이익보다 앞세웠으니, 그는 안으로는 민주주의가 활짝 피도록 했지만 밖으로는 제국주의 정책을 추구했다.
그의 그런 정책은 단기적으로는 아테네를 부유하게 했고 그의 인기를 높였지만, 장기적으로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일으켜 그리스가 공멸하는 단서를 만들었다. 지금 세계 전체의 이익은 고려하지 않고 그저 미국의 이익만을 앞세우는, 특히 보호무역주의를 공격적으로 추진하는 대통령은 미국 안에서 큰 인기를 누릴 수 있다. 그런 미국판 페리클레스는 세계로선 큰 재앙이다.
우리가 미국의 대통령 선거를 주의깊게 살피고 세계적 지도자의 자격을 갖춘 후보가 대통령에 뽑히도록 우리 나름으로 애써야 하는 까닭이 바로 거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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