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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산 '4백년의 약속'-김별아 '개인적 체험'

소설이라는 나침반이 지향하는 것은 결국 인간의 삶이다. 지나간 시절의 흔적이나 동시대인들의 일상적 삶, 사랑 등 다양한 풍경들이 소설의 틀 안에 담기기 때문이다. 과거와 현재의 시간속에서 긴 호흡으로 조망한 삶의 무늬들. 작가가 언어로 빚어낸 그림은 우리의 일상이라고 간주해도 무리가 아니다.

중견작가 한수산씨의 소설집 '4백년의 약속'(나남출판 펴냄)이나 김별아씨의 '개인적 체험'(실천문학 펴냄)도 이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90년대 작품세계를 결산하는 의미를 담은 한씨의 소설집에는 세 편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정유재란때 일본으로 끌려간 도공(陶工)들의 이야기와 한국전 반공포로들의 삶, 무지막지한 군사혁명의 물결을 버텨온 한 작가의 체험이 녹아 있다. 표제작 '4백년의 약속'은 400년동안 이국땅에서 대를 이어 습명(襲名·이름을 이어온)하며 도공으로 살아온 한 가문의 족적을 그린 이야기다. 일본 가고시마 심수관 가(沈壽官 家)가 모델. 작가는 긴 세월속에서도 굽힘 없이 도혼을 이어온 한 가계의 흙과 불의 세계를 투명한 감성으로 그려내고 있다. '시간의 저편'은 남도 북도 아닌 제3국을 찾아 떠난 전쟁포로들의 삶을 더듬어간 작품. 국적란에 '조국 없음'(No Where)이라고 쓰면서 살아갈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 냈다. 또 '말 탄 자는 지나가다'는 혁명의 허구성을 희화적으로 표현한 소설이다. 군사 독재정권 시대 '필화'를 겪은 작가가 16년에 걸친 체험을 바탕으로 그 앙금을 소설화 했다. "이 작품집으로 어떤 굽이 하나를 돌아나온 느낌"이라는 작가의 고백처럼 인간과 사물에 대한 이해의 깊이와 삶의 체험이 훨씬 깊어지고 두터워진 작가정신을 만나게 된다.

한편 김별아씨의 장편 '개인적 체험'은 80년대말에서 90년대초까지 대학생활을 했던 세대들의 정체성에 대해 파고 든 '신후일담' 소설이다. '강경대 치사사건'으로 촉발된 일련의 시위사태와 이에 절망한 젊은이들의 분신, 시인 김지하씨의 '죽음의 굿판' 발언을 둘러싼 용공세력 논쟁 등으로 어지러웠던 한 시기가 이 작품의 배경. 작가는 저항과 노동운동으로 요약되는 80년대초와 달리 별 다른 특징없는 시대를 살아간 젊은이들의 또 다른 고민과 갈등을 그려낸다.

시대의 아픔을 함께 한다는 명분으로 뛰어든 학생운동, 위장 취업을 체험한 주인공 '나'의 열아홉살 여대생 시절부터 한 아이의 엄마가 되기까지 급격하게 변화하는 사회환경과 개인적 삶을 새로운 시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6공의 가파른 정국을 중심테마로 다룬 이 소설에서 작가는 '값없이 흘린 피는 없다'는 자아 성장의 의미를 성찰하고 있다.

徐琮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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