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막과 막사이-리얼 연기

"감정 섞인 연기를 하라"는 것이 연극 연출자의 '단골' 주문이다. 그래도 힘든 것이 리얼한 연기다.

그러나 간혹 '감정 섞인' 리얼한 연기를 구경할 때가 있다.

95년 연극 '뜨거운 땅'에서는 한국 유학생과 일본인의 격투장면이 리얼했다. 한국 유학생의 의협심이 연기의 정도를 넘었다. 주먹이 일본인의 안면을 강타했고, '퍽' 하는 소리에 얻어 맞은 연기자는 물론 관객까지 놀랐다.

이어 일본도를 빼 들고 한국 유학생의 등을 베는 장면. 비록 날은 안 세웠지만 진검을 빼어들자, 객석에서 비명이 터졌다. "연기자가 진짜 열받았다"는 우려의 비명이었다.

극과 현실을 혼동했던 옛날 악극의 풍경이 재현된 것이다.

셰익스피어 연극 '실수연발'의 한 장면. 쌍둥이 주인과 쌍둥이 하인이 벌이는 좌충우돌 코미디.

하인이 주인의 대사를 '따 먹었다'. '따 먹는다'는 말은 대사가 끝나기 전에 상대가 치고 들어와 리듬을 잘라 먹는 것. 관객을 웃길 수 있는 찬스를 하인이 뺏아가니 주인에겐 여간 기분 상한 일이 아니다.

절치부심하던 주인, 하인을 때리는 장면에서 감정이 들어갔다. '철썩!' 눈에 불이 번쩍하자, 이번에는 하인이 화가 났다. 하인이 주인을 때리는 장면. 더 센 '보복'이 이어졌고 갈수록 강도를 더해갔다. 후반부 쫓고 쫓기는 장면은 정말 가관이었다. 무대에서 실제같은 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맞고 도망가고, 때리고 쫓아가는 연기자의 '리얼 연기' 덕분에 관객은 모처럼만에 실감나는 연극을 볼 수 있었다.

선후배 사이인 두 연기자는 막 뒤에서도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니까""아니긴 뭐가 아냐?"며 한동안 티격태격했다는 후문.

金重基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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