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와대청소원 뇌물비질

청와대 말단직원이 '청와대 과장'을 사칭하면서 정현준 한국디지탈라인(KDL) 사장에게 접근, 민원해결을 대가로 4억원을 뜯어낸 사실이 드러나 관심거리가 되고있다.

특히 수천억대 자금을 주무른 정씨가 '청와대'란 직함에 현혹돼 기능직 8급에 불과한 청소직원에게 각종 청탁을 수시로 해왔고, 그에게 사례비조로 거액을 뜯겨왔다는 점에서 일종의 허탈감을 자아내게 하고 있다.

검찰이 10일 사기 혐의로 구속한 전 청와대 위생직원 이윤규(36)씨는 99년 하반기 사업가인 친구 소개로 정씨를 소개받을 때부터 '청와대 공관 과장'으로 행세했으며, 정씨는 이를 굳게 믿고 1년 가까이 그를 실력자 선배로 깍듯이 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씨는 이후 이씨와 친분을 유지하면서 그가 10년간 청와대 환경미화를 맡았던 청소직원이란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자신의 사무실을 자주 찾은 그에게 각종 청탁을 했다.

정씨는 특히 지난해 10월 이수원 대신금고 사장이 횡령 혐의로 경찰청 특수수사과의 조사를 받을 무렵과 같은해 12월 대신금고가 불법대출로 금감원 조사를 받게 되자 이씨에게 '어디 부탁할만 곳이 없겠느냐'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이씨는 '알아봐주겠다'고 약속한 뒤 청와대 다른 직원을 사칭, 형식적인 청탁전화를 한 뒤 민원이 해결된 것처럼 속인 뒤 정씨로부터 지난 1월부터 8월까지 주식투자 손실금 2억8천만원을 포함해 15차례에 걸쳐 총 3억9천830만원을 뜯어낸 것으로밝혀졌다.

이씨가 정씨로부터 뜯어낸 사례비에는 용돈, 술값은 물론 주택구입비(6천500만원), 가구구입비(900만원), 생활비(1천만원)가 포함돼 있으며 용돈만 해도 550만~1천150만원씩 3차례에 걸쳐 2천700만원에 달했다.

이씨는 또 정씨에게 '장외주식을 사달라'며 친지 등으로부터 끌어모은 7억5천만원을 정씨 펀드에 투자했다가 주가하락으로 큰 손해를 보게 되자 손실보상을 요구했다가 정씨가 손실보전금조로 5월에 2억4천만원을 주자 액수가 적다고 반발, 6월부터 8월까지 4천만원을 추가로 받아내기도 했다.

정씨는 그러나 지난 6일 국감증언에서조차 "청와대 공관의 이모 과장을 잘 안다"고 진술할 정도로 이씨를 청와대 과장으로 굳게 믿었으며 검찰에서 이씨와 대질조사를 받을 때 그의 정체를 뒤늦게 알고서는 허탈해했다고 검찰은 전했다.

수사관계자는 "민원이 어떻게 해결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씨가 실제로 힘을 썼다기보다는 자동으로 해결된 일을 자신의 공이라며 생색을 낸 뒤 돈을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씨의 사칭행각이 '꼬리'가 잡힌 것은 최근 발견된 정씨의 수첩에 적힌 청와대전화번호가 단서가 됐다.

미심쩍은 번호를 접한 청와대가 자체확인에 나서면서 이씨의 비리는 금방 발각됐고, 청와대는 곧바로 사표를 받은 뒤 검찰에 신병을 이첩했다.

법조계의 한 인사는 "권력층의 직함이 우리 사회에 어떻게 통하는지를 단적으로 드러낸 사건"'이라며 "권력의 힘을 빌리면 모든 민원을 해결할 수 있다는 우리 사회풍조의 한 단면"이라고 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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