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다정도 병이련가

때때로 이 시대의 '동백아가씨'가 그립다. 사랑을 위해 왕위를 버린 영국의 윈저공은 이제 전설 속의 주인공일 뿐인가? 삶도, 정(情)도, 사랑도 너무나 인스턴트화 돼버린 것 같은 요즘이다.

유행가 가사처럼 가슴을 도려내는 듯한 아픔으로 누군가를 절실히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이를 위한 희생을 오히려 기쁨으로 여기며 살던 시대도 있었고, 모든 유행가 가사가 저마다 자기 이야기처럼 들리던 시절도 우리에겐 있었다.

유난히 사람좋아하는 성격탓인지 주위의 친구나 선후배, 동료들에 이르기까지 그들로 인해 얻는 기쁨과 즐거움도 크지만 때로는 사소한 일로 마음 상하고 가슴앓이 할 때도 적지 않다. 때로는 내 기준에 맞춰놓고 상대방을 좋아하기도 했다가 싫어하기도 했다가 이런 저런 변덕을 부려보기도 한다. 그래선지 가까운 친구들로부터 "성격 좀 고쳐라"라든지 "다정(多情)도 병이다"라는 등의 핀잔도 많이 듣는다. 하지만 그런저런 핀잔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사람을 좋아한다. 살아가면서 돈과 명예·성공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행복과 위안도 적지 않지만 그래도 우리가 진정으로 마음을 주고 받고 위로받을 수 있는데는 역시 인간뿐인 것을 깨닫게 된다.

'사람 인(人)'자를 보더라도 두 획이 서로 기대어서 한 글자를 만들고 있지 않는가. 예나 지금이나,잘 사나 못 사나,자식이 있건 없건, 우리 인간에게 최대의 관심사는 역시 인간이요, 인간사이에 오가는 정이다.

짧은 인생길에서 질긴 정 때문에, 사랑하는 이들로 인해 잠 못드는 밤이 있다하더라도 정을 주고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이 있는 것 그 자체가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가진 것 없고 지위가 보잘 것 없어도 없는 것에 대해 불행하다고 얘기하지 말고 가진 것에 대해 행복을 얘기해보자. 가까이에 있는 모든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으로 다가오는 따뜻한 봄엔 그리움과 사랑만을 얘기할 수 있으면 좋겠다.

영희유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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