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부정부패 방지법 취지 실종

올해로 시행 9년째를 맞는 고위공직자의 재산등록이 신고단계와 사후검증 과정에서 허술한 점이 많아 '부정부패 방지'라는 법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재산등록은 지난 93년 시행초기 투기의혹 등이 밝혀져 상당수 공직자들이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공직 청렴성을 높인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고의적인 허위신고와 누락 등 불성실 신고로 '통과의례'에 그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공직자 재산등록의 대표적인 문제점으로 여러차례 지적됐으나 아직도 고쳐지지 않은 것은 '부양을 받지 않는 직계 존비속은 고지를 거부할 수 있다'고 규정한 공직자윤리법 12조4항의 '고지거부' 조항.

이 조항은 재산등록전에 피부양 부모나 자녀명의로 변칙상속이나 위장증여 등을 해 재산을 축소.은닉하는 방편으로 이용될 수 있어 재산 신고자가 합법적으로 법망을 피해나갈 수 있는 길을 터주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예를 들어 갓 분가한 자녀가 억대의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는 경우 사실상 부모의 재산임이 분명한 데도 고지거부권을 내세워 신고하지 않는 것은 옳지 않다는 지적이다.

이는 독립생계를 유지하는 직계 존비속의 사유재산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만들어졌으나 재산은폐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많아 재산공개의 근본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또 재산등록은 아파트와 골프장회원권의 경우 국세청 기준시가, 토지는 지방자치단체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삼게 돼 있어 실제 재산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1년동안의 소득중 소비부분이 포함되지 않는 것도 문제다. 불로소득을 취한 공직자가 그 소득을 모두 써버렸을 경우 찾아낼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와함께 재산등록의 진실성을 규명하는 실질 심사기능이 너무 형식적이고 취약하다는 점도 문제점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

현재 각급 기관의 공직자윤리위원회는 등록재산 총량이 맞는지 여부를 금융기관과 부동산 전산자료 등을 통해 대조할 뿐 재산형성과정에 대한 검증은 사실상 능력밖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93년 시행 첫 해를 제외하고는 재산변동신고에서 신분상 불이익을 받은 고위공직자는 손에 꼽을 정도다.

이에 대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직계존비속의 고지거부조항을 삭제하고 재산상황에 대한 심사뿐만 아니라 재산의 형성과 취득과정에 대해서도 엄격한 심사가 진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실련은 또 "직무상 독립성이 없는 행정자치부가 공직자 재산등록업무의 기획.총괄업무를 맡기보다는 감사원에서 이를 관장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행정자치부 관계자는 "고지거부 등 현행 공직자윤리법은 논란이 많아 당장 손을 대기는 어려워 등록대상자들의 성실한 신고를 바랄 뿐"이라며 "현재 대민접촉이 많은 건축, 건설, 위생, 환경분야에 근무하는 공직자의 재산공개 범위를 5급 이하로확대, 내년부터 실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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