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주영 사후...현대그룹 운명은

정주영 전 명예회장의 별세는 현대그룹에 '신화(神話)의 상실'로 다가서고 있다.단지 창업주로서가 아닌 현대그룹의 성장엔진이자 정신적 구심점이었던 '도전과 개척정신'의 상실로 현대인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심리적 공황이 현대그룹의 진로와 위상에 딱히 변수로 작용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정 명예회장은 '정신적 지주'로서의 역할에 불과했고 그룹은 일찌감치 분할수순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현대그룹이 국내 최대그룹으로서의 영화(榮華)를 잃은지는 사실 오래다. 자산규모 106조원의 거함(巨艦) 현대호는 지난해 현대건설이 유동성 위기를 겪으면서 시장으로부터 대표적 '부실징후 기업'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썼다.

법통(法通)을 이은 정몽헌(MH) 회장이 급기야 그룹해체라는 최후카드를 꺼낸 것은 그만큼 현대그룹에 대한 시장불신이 치유불능의 상태까지 왔음을 인식한 것이다.그룹해체 시나리오는 증권을 포함한 금융부문을 미국 AIG에 매각하고 전자와 중공업을 2001년안으로 계열분리 하겠다는 것.

결국 지주회사격인 건설과 상선을 주축으로 한 '미니그룹'으로 거듭난다는 의미다. 이 경우 현대그룹의 자산총액은 24조2천억원으로 재계 순위 5위 그룹으로 떨어지게 된다.

그 대신 그룹으로부터 독립했거나 독립할 예정인 현대.기아차는 자산 35조7천억원으로 재계 4위를 기록하고 현대전자는 20조8천억원으로 6위, 현대중공업은 12조원으로 9위를 각각 차지하게 된다.

이같은 그룹 분할구도는 현대오너가의 구심점이었던 정주영의 별세로 더욱 선명해질 전망이다.

그러나 '위기가 기회'라는 고인의 지론대로 현대그룹과 관계사들에게는 '왕회장'의 별세가 오히려 그룹위상을 높이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미 그룹의 발전적 해체를 통한 독립기업화와 전문경영체제 도입이라는 시대적흐름에 순응하는 것이 현재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는 얘기다.

특히 이같은 그룹해체 시나리오가 단순한 해체보다는 형제그룹간 '느슨한 연결고리'를 맺는 범(汎)그룹 형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그룹의 외형 축소만을 거론하기는 어렵다는 시각이 높다.

정몽헌(MH)의 현대그룹과 정몽구(MK)의 현대.기아자동차 그룹, 정몽준(MJ)의 현대중공업 등이 협력관계를 유지한다면 기존 그룹체제 못지 않은 시너지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는게 재계의 중론이다.

현대그룹의 한 고위임원은 "뭉치기 보다는 헤쳐야 사는 세상"이라며 "왕회장의'승부사 기질'에만 의존하지 않고 형제그룹이 각각 합리적 경영을 꾀하면서 필요할때 돕는다면 오히려 과거 그룹보다 시장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게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이런 협력관계 구축은 '포스트 정주영'을 둘러싼 형제간 갈등의 골이 깊게 패여있는 탓에 현실적으로 기대난이라는 시각이 높다.

특히 빚더미에 올라앉은 현대그룹과 손잡을 기업이 거의 없다는데 문제의 핵심이 있다.

현대그룹은 △건설 △전자 △투신사태라는 '3재(災)'를 조기에 극복하지 못할 경우 최악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절체절명의 위기속에서 창업주 정주영이 떠난 현대그룹의 앞날은 '왕회장'의 장례식 분위기처럼 암울해 보인다는게 재계의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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