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 하는 오후

빈 집의 아이는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어미가 올 때까지 담 밑에 쪼그리고 앉아있다.

빈 집의 아이는 이제 울지 않아도 밥 때가 되면 어미를 찾는 울음 소리가 여전히 하늘 한 모서리에서 높다.

퇴근 시간 서두르는 어미의 마음을 갈수록 더 붉어지는 저녁 노을과 바쁘게 떨어지는 저녁 해가 보여준다.

오늘 빈 집의 아이는 라면도 삶아먹지 않고 제 책가방 옆에서 구겨진 채 자고 있다.

체육을 했는지 체육복 차림에 얼굴과 다리가 땀과 먼지로 얼룩져서 현관문도 잠그지 않고 자고 있다.

-박정남 '빈 집의 아이'

산업사회는 여성의 노동력까지도 사회화한다. 좀 쉬운 말로 하자면 마누라도 돈을 벌어야 목구멍에 풀칠한다는 뜻이다. IMF 이후 서민들의 경제는 더욱 고달퍼졌다. 가정에서 안팎 둘 다 벌어도 하루를 버티기 힘든 가정이 늘어났다.

우리 사회의 부의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었다. 엄마가 일 나간 집 아이들의 간난(艱難)한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 아이들을 건강하고 인간답게 키우는 것은 국가의 몫이다. 이 애들이 자라서 우리 사회를 이루고, 또 이끌어 간다. 5월 가정의 달에 곰곰히 읽어보고 싶은 시이다.

김용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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