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후 2시쯤 대구시 중구의 한 상가밀집지구. 불법 주·정차단속차량이 나타나자 자전거를 탄 40대 남자가 다급히 호루라기를 불며 상가를 돌았다. 곧바로 10여명이 상가에서 뛰어나와 각자 시동을 걸고 부리나케 도로를 빠져나갔다. 단속공무원들은 하는 수 없이 도로를 그냥 지나갔다.
이곳에서는 한달전부터 단속공무원을 감시(?)하는 파수꾼이 생긴 이후 종전에 하루 30~40건에 달하는 주정차위반 단속이 하루 2, 3건으로 줄었다. 때문에 불법 주·정차는 더 늘고 있다.
20일 오전 수성구 범물동 한 아파트 단지. 지상 주차장은 2중3중 주차 때문에 차량을 빼지못해 쩔쩔 매는 풍경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반면 지하2층 주차장은 텅 비어 있었다.
승용차를 빼지 못하던 한 주민은 경비실을 통해 난폭주차 차주를 찾았지만 오랫동안 나타나지 않았다. 화가 난 이 주민이 주차금지 팻말을 들어다 난폭주차 차량위에 올려놓자 그제서야 차주인이 어디선가 황급히 나타났다.
상가, 인도, 주택가 이면도로는 물론 버스 승강장, 버스전용차로 어디에서도 주차질서가 '실종상태'다. 단속조차 두손을 든 대구의 주차 무질서로 교통혼잡, 통행불편, 화재진압 방해 등 주차 무질서로 인한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닌데도 근본대책 없이 '술래잡기식 단속'만 되풀이하는 실정이다.
지난 한해 대구에서 단속당한 불법 주·정차는 41만5246건. 차량 2대당 1.2번 꼴로 불법 주정차단속을 당한 셈이다. 시내버스기사 강모(41.대구시 북구 산격동)씨는 "버스승강장에 불법주차한 차량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도로 한복판에다 승객들을 내려주는 일도 많다"며 불법주차에 대한 보다 강력한 단속을 요구했다.
하지만 단속을 당한 불법주차 차주들은 되레 큰소리를 치기 일쑤다. 18일 오후 5시쯤 대구 중구청 교통지도과. 주·정차 단속에 이의를 제기하는 민원인 20여명과 단속공무원들간에 한바탕 실랑이가 벌어졌다. 장애인운전자 등 정당한 사유를 지닌 4, 5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화풀이성 민원. 특히 불법 주·정차차량이 많은 중구청 경우 인터넷 홈페이지 접수 민원만 한달 평균 80~90건에 이른다.
한 공무원은 "민원인들과 하루종일 싸우는 게 일과여서 불법 주·정차단속 담당과는 기피부서로 전락했다"고 말했다.
심지어 공무원이 불법 주·정차단속에 불만을 품은 운전자로부터 폭행이나 보복을 당하는 일도 잇따르고 있다. 19일 불법주차로 견인된 자신의 승합차를 견인료를 내지 않고 끌고가려던 서모(38.고령군)씨는 이를 막는 견인사업소장 고모(51.대구시 동구 신암동)씨를 차량으로 들이받아 전치 2주의 상처를 입혔다.
경찰에 입건된 서씨는 "불법주차위반 과태료에다 견인료까지 물게 돼 홧김에 일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대다수 운전자들은 주차단속에 대한 시비가 불거지는 원인이 무원칙한 단속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단속시간, 단속대상 등 주·정차단속의 상당 부분이 기초단체와 단속공무원의 재량에 달려 있어 '고무줄식 단속'도 적지 않다는 것.
지난 11일 주차위반으로 단속당한 안모(37.대구시 서구 비산동)씨는 "밤 10시이후로는 단속을 않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10시10분에 스티커를 끊겼다"며 "차량통행에 큰 불편이 없는 야간에까지 단속을 벌이는 것은 실적 올리기 아니냐"고 따졌다. 상인 김모(45.대구시 중구 대봉동)씨는 "여러대 주차위반 차량 가운데 자신만 스티커를 떼였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계명대 교통공학과 박용진 교수는 "만성적인 주차 무질서가 개선되지 않는 것은 자신의 편의를 위해 법을 어길 수 있다는 운전자들의 그릇된 의식과 민원을 의식한 관청의 미온적 단속 때문"이라며 "원칙있는 주차단속 행정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최병고기자 cbg@imaeil.com
교통전문가들은 '주차는 공짜'라는 운전자의 빗나간 인식과, 주차수요만 유발해 놓고 교통정책때문에 만성적 불법 주정차가 빚어지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3월말까지 대구시의 불법주·정차 단속은 9만6천755건. 이 가운데 과태료 미납률은 79.5%(76,981건)에 이른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도 10만1천863건이 단속됐으나 미납률은 올해와 똑같았다. 전문가들은 "주차위반 과태료는 '이중처벌'이라는 이유로 가산금을 적용않기 때문에 체납이 많다"고 분석했다.
4월말 현재 대구시의 차량등록대수는 70만3천48대. 대구시에 따르면 이같은 차량에 맞춰 주차난을 해결하려면 최소 60만대의 주차공간이 필요하지만 공영주차장 4천713곳, 11만5천876면에다 민영주차장을 더하더라도 주차공간은 44만여면에 불과하다.
주·정차 금지구역비율도 대구시는 36.7%로 서울의 50.4%, 부산의 78.1%에 비해 낮은 수준이이어서 교통소통을 위해서는 지정확대가 시급하다는 여론도 많다.
◇ 외국은 어떻게 하나
▽ 미국=대도시의 도심지역은 건축물부설주차장과 도심외곽지역의 공공주차장을 활용하며 도심지역에는 노상주차장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주차수요를 줄이기 위해 뉴욕 맨하탄 경우 도심으로 유입하는 교량, 터널을 유료화해서 일차적으로 도심내 차량진입을 억제하고, 빌딩에 주차장 설치를 의무화하지 않아 주차공간을 최소화시켜 이차적인 억제를 시도하고 있다.
불법 주·정차단속도 강력하게 이뤄진다. 주차위반벌금은 55달러이며 미납시에는 3차까지 독촉, 가산금이 60달러씩 추가된다. 3차독촉 이후에는 자동차 견인, 압류, 공매,급여.재산압류, 예금압류와 같은 강제집행절차에 들어간다. 벌금체납차량은 수배하고 발견시 '족쇄(booting)'를 채워 차량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벌금을 2배로 물어야만 풀어준다.
▽ 일본=도심지역에서는 건축물부설타워주차장을 활용하며 도로율이 낮아 노상주차장은 허용하지 않고 있다. 일본은 60년대부터 차고지 증명제도를 도입했다.
도쿄의 경우 월 민영주차장 요금은 최고 15만엔에 달할 정도로 높아 도심에 차량주차는 거의 불가능한 실정. 이로 인해 시민들의 자전거이용이 생활화되어 있어 각 주차장마다 대규모의 자전거주차장을 설치,운영하고 있다.
▽ 홍콩· 프랑스=홍콩은 도시 전지역에서의 주차수요는 대단히 크지만 출·퇴근을 위해 차를 몰고 다니는 것은 찾아보기 힘들다. 불법주차차량에 대한 견인권이 민간주차장 사업자에게도 주어져 있다. 이들은 보유한 레카차로 주차위반 차량을 견인, 자기주차장에 보관하고 범칙금 일부와 견인료를 받는다.
프랑스는 경찰,시 공무원이외에도 버스전용차로 경우 주차위반 단속권이 버스회사 직원에게도 주어져 있다. 15일 이내 과태료를 내지 않으면 자동차 소유자를 수배, 2배의 가산금을 부과한다.
◇ 전문가의견(대한교통학회 대구.경북지부 김갑수 지회장·영남대 도시공학과 교수)
장기적으로는 우선 재개발지구, 주택, 상가지구 선정 등 도시계획에 따른 공영주차장의 충분한 확보가 필요하다. 또 현행 '건축물 부설주차장 설치조례'가 연면적당 주차대수를 규정하고 있지만 주차수요에 못 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허가요건을 강화하고 현실화해야 한다.
단기적인 대책으로는 교통소통을 고려, 노상주차장을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한편 학교운동장, 공원등의 지하나 하천둔치 등 '틈새지역'을 공영주차장으로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미국처럼 '무인유료주차장(parking meter)'을 도심에 설치, 30분 초과시 주차위반이 되도록 하면 도심으로의 차량유입을 최소화할 수 있다. 차고지 의무확보제도 기존의 차량은 제외되지만 우선 새로 차를 구입하는 경우 적용하는 것을 시작으로 연차적인 도입이 필요하다. 불법주차가 많은 곳은 통계를 내 그 이유를 파악해 본의 아닌 불법주·정차를 막아야 한다. 외국처럼 과태료 상습연체시 차량압류와 같은 '단속 후 조치'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최병고기자 cb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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