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글리벡 신드롬

암(癌)은 무자비한 살인자다. 한 개인과 가족을 말할 수 없는 고통으로 몰아넣으며, 경제적인 기반까지 송두리째 파괴시키기도 한다. 학자들은 '20세기의 천형인 에이즈는 조만간 정복될 것으로 보이지만 암 정복은 아직 요원하다'고 입을 모을 정도다. 고대 그리스의 히포크라테스는 암을 '게'라는 뜻의 '카르키노스'로 명명했으며, 영어 '캔서'의 어원도 '카르키노스'다. 암은 게처럼 껍질이 단단하며 게의 걸음걸이처럼 옆으로 잘 퍼지기 때문에 붙인 이름인지 모르지만 그 '게걸음'이야말로 무섭기 짝이 없다.

스위스계 다국적 제약사인 노바티스가 개발한 만성골수성 백혈병 특효약으로 알려진 '글리벡'이 국내 환자들에게도 무료 공급, 누워서 입원했으나 걸어서 퇴원할 정도로 큰 효과를 나타내 화제다. 이 먹는 약을 복용한 말기 급성기 환자 2명은 8일만에 상태가 급격히 호전, 백혈구와 혈소판 수치가 거의 정상으로 회복되고, 혈액 내 암세포 비율도 치료 전 60%에서 1% 미만으로 떨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을 치료한 가톨릭의대 김동욱 교수는 '이들 외에 글리벡을 투약한 다른 환자들도 병세가 빠르게 호전되고 있다'며, 현재의 회복 속도라면 내주 중 입원 환자 모두 통원 치료가 가능하다고 내다보기도 했다. 그러나 내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 등에 대해 알려져 있지 않고, 결코 '완치제'라고 볼 수 없으므로 현재로선 환자의 병세를 호전시킨 뒤 골수 이식을 하는 것만이 가장 확실한 치료법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최근 신약 허가 사상 최단시간에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은 '글리벡'은 암환자들 사이에서 폐암.자궁암.간암까지 치료 가능한 '기적의 만능 치료제'로 착각하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으며, 미국에서 진행 중인 임상시험에 참여하는 방법을 묻는 전화가 폭주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이 약의 연구자들마저 기존 항암 치료보다 생존 기간을 2~3배 연장시킬 수 있다는 견해를 보이고 있어 안타깝게 한다.

암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은 지구촌 곳곳에서 다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 치료 성적도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인은 암 때문에 가장 많이 죽어가고 있으며, 암으로 인한 사망률이 아직도 50%대에 이른다. 유전자 연구 등으로도 그 실낱 같은 희망이 보이기는 하지만 언제쯤 그'게걸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암의 극복과 함께 우리 사회에 득실거리는 '암적인 존재'들도 사라지는 날이 오게 될 것인가.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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