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북 북부 가뭄 장기화

늦여름 수확을 노렸던 고추.담배.배추 등 여름 밭작물들이 큰 타격을 받고 있다. 성장은 완전히 중단됐고, 크지도 못한 상태에서 조로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고추=본격 개화기를 일주일여 앞두고도 키가 30여cm에도 못미쳐 10여cm나 덜자랐지만 꽃은 10일이나 앞당겨 피는 조로 현상이 심각하다. 게다가 보통 곁가지가 포기당 5∼8개씩 자라야 하나 올해는 5, 6개에 머물고 있다. 가뭄이 더 길어지면 수정률마저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청송 진보면에서 고추농사 3천평을 짓고 있는 김진동(54)씨는 "고추의 성장이 멈추고 이미 고추꽃이 피었다"고 했으며, 고추.잎담배 등 8천여평을 농사 짓는 파천면 박종백(57.옹점리)씨는 "벌써 꽃이 피었다는 것은 농사를 망쳤다는 이야기"라고 했다.

영양에서는 작년에 2천200ha의 밭에서 5천100여t의 고추가 생산돼 370여억원의 소득을 올렸으나, 영양군 청기면 청기리 김근호(57)씨는 "작년에 1천800여만원 됐던 ha당 소득이 올해는 절반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봉화에서는 고추밭 1천816ha 중 249ha에서 가뭄 피해가 심각한 것으로 집계됐다. 안동시 도산면 가송리 건지산 마을에서 3천평의 고추 농사를 짓는 오모(56)씨는 "이미 많은 고추가 말라 죽어 다른 작물로 대파해야 할 상황"이라고 했다.

◇잎담배=북부지역에서 고추 못잖은 소득 작물인 담배 경우, 영양에서는 작년에 851ha를 심어 2천282t을 생산, 145억원의 소득이 나왔으나 50cm가 넘어야 할 키가 올해는 30cm에도 못미치고 있다. 전체의 68% 이상이 가뭄피해를 입은 것으로 집계됐으며, 일부는 고추처럼 10여일 앞당겨 꽃대가 생기는 조로현상을 나타내고 잎이 마르는 오갈병까지 만연하고 있다. 영양군 입암면 산해리 권종호(67)씨는 "포기당 20여개의 잎이 난 뒤 꽃대가 나와야 하나 올해는 잎이 10개밖에 안되는 상황에서 꽃대가 나왔다"고 했다. 꽃이 피기 시작하면 성장이 중단돼 상품 생산량이 크게 줄 수밖에 없다는 것.

봉화군 법전면 이모(44)씨는 "4월 말에 1만3천여평의 잎담배를 심었으나 다음달 중.하순쯤 나와야 할 꽃대가 벌써 나오고 잎이 말라 죽었다"며, 17잎까지 수확해야 정상이나 올해는 10잎 정도 밖에 거둘 수 없게 됨으로써 30% 이상의 감수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봉화군 봉화읍 함형태(43)씨는 "오갈병마저 확산돼 20∼30% 감수는 피할 수 없게 됐다"고 했다. 봉화엽연초 조합 이재국 조합장은 "영주.봉화 잎담배 소득은 160여억원 돼 왔지만 30% 감수할 경우 올해는 피해액이 50여억원에 달할 수도 있다"고 했다.

◇콩마저 파종 못해 발동동=참깨.땅콩 등은 이달 초순까지 파종돼야 했지만 거의 포기된 상태. 때문에 농가들은 콩 파종으로 바꾸려 하지만 이마저 손을 못쓰고 있는 실정이다. 영양에서는 1천400여ha나 되던 콩 파종면적이 올해는 크게 줄었고, 일부 심은 것도 어린 모 크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임종식(68.입암면 산해리)씨 등은 "콩 이식이 늦어지면서 모종이 웃자라 앞으로 보름을 더 지내도 비가 오지 않으면 콩 농사를 포기해야 한다"고 했다.

영주시 단산면 단곡리 이임상(40)씨도 "3천여평의 밭에 콩을 심으려고 했으나 현재 상태로서는 퍼석퍼석 먼지만 날려 어쩔 줄 모르고 있다"고 했다.

◇여름 배추=여름 끝머리 출시를 노리는 배추도 타격이 커, 영양지역 최대 산지인 석보면 원리 등의 배추밭에서도 속이 차지 못한 상태에서 추대가 올라 오는 불량품들이 생겨나 농사가 망쳐지고 있다. 영양 배추는 265ha 중 46%에서 가뭄 피해가 심각하다.

안동시 도산면 동부리 월매마을에서 주민들과 함께 3만평의 배추밭을 경작하는 조정식(64)씨는 "타 들어가는 배추밭을 지켜보고 있자니 내 가슴도 탄다"고 했다. 앞으로 10일간 충분히 물을 대지 못하면 성장이 멎어 수확이 불가능하다는 것.◇그외 밭작물들=그 외에도 갖가지 작물에서 피해가 심각하다. 봉화 경우 약초 337ha중 81ha에서 잎이 시드는 현상이 나타났다. 영주시 단산면 병산리 허익정(45)씨는 "이달 초순 1천여평의 논에 하수오를 심었으나 피해가 심해 벼를 심으려고 논을 갈아엎었다"고 했다. 안동시 녹전면사무소 김인영 산업담당은 "면민들의 주요 소득작물인 산약이 성장을 멈추거나 이미 말라 죽고 있어 엄청난 피해가 예상된다"고 했다.

안동시 도산면 원천.단천리 일대 수박밭 10만여평의 막 옮겨 심은 모종 상당수도 시들고 있다. 안동호에서 2단 양수로 물을 끌어 오고 있지만 역부족이라고 했다.의성군 안평면의 이원희 안평조합장은 "안평지역 상당수 마늘밭이 가뭄으로 마늘쫑이 올라오지 않는 등 마늘잎이 타들어 가고 있다"며 "봄 가뭄이 6월까지 계속될 경우 수확포기 농가들이 속출, 마늘 생산량이 30%이상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과수밭도 타격이 심각, 낙동강 지류인 의성 미천 상류인 점곡.옥산지역 20km구간은 벌써 하천이 고갈된 상태에 있다. 청송군 부남면 일대 과수원 125ha 300여 농가들은 꽃 서리 피해, 수정 저조 등에 가뭄까지 겹치자 올해 사과 농사를 망쳤다고 절망스러워 했다. 이기태(57)씨는 "사과농사 18년만에 처음 겪는 일"이라 했고, 5천평 과수원을 가진 이태석(45)씨는 "15년생 나무에 사과가 50개도 안달렸다"며 한창 진행돼야 할 열매솎기를 포기했다고 했다.

청송군 농업기술센터 심장섭(44) 경제작물 담당은 "부남지역의 사과 생산량은 30~45% 이상 감소가 불가피하다"고 했다.

양봉농가까지 울상이다. 청송의 이병달(58.진보면)씨는 "봄 가뭄때문에 꿀 생산량이 지난해의 절반도 안된다"고 했다. 이동 양봉 20년 경력의 윤동기(56.양산)씨는 "봄가뭄으로 벌꿀 채밀양이 없는 것은 처음"이라며 "요즘 벌 먹이로 벌꿀과 설탕물을 섞어서 다시 벌통앞에 둔다"고 말했다. 이는 꽃필 시기의 서리 피해, 밤낮 20℃ 이상의 일교차 등으로 벌의 활동이 저조한 것도 큰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문경.윤상호기자 younsh@imaeil.com

안동.권동순기자 pinoky@imaeil.com

청송.김경돈기자 kdo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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