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나눔공동체'서 장애아 돌보는 허인순씨

'화요일마다 빨래하는 여자'. 영화제목이 아니다. 대구 달서구 상인중학교 앞 골목 한 건물의 3층. 장애인 어린이들이 기거하는 '나눔 공동체'에선 매주 화요일 오전 10시가 되면 허인순(33·대구시 달서구 상인동 청구아파트)씨가 빨래를 시작한다. 어질러진 방을 청소하고 혼자서는 꼼짝도 못하는 아이들 3명을 목욕시키고 하다보면 하루가 금방이다. 특수어린이집에서 두 아이들이 돌아오기 전에 모든 일을 끝내려면 시간이 빠듯하다.이곳 '나눔공동체' 식구는 모두 15명. 저마다 정신박약과 지체장애, 자폐증을 지닌 아이들이다. 이왕욱(39) 목사가 저소득 가정 아이들을 중심으로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저녁에 부모들이 데려가는 아이는 3명뿐.

매주 한번씩 빠지지않고 찾아오는 허씨는 두 아이의 엄마인 평범한 아줌마다. 2년전 나눔공동체 간판을 보고 궁금해하다 무작정 찾아와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작년말까지는 남편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지금 네살인 막내를 두살 때부터 어떻게 업고 다녔나 싶을 정도다.

온 집안 벽면마다 빼곡이 글자를 써넣을 만큼 기억력이 좋은 '큰소리'(별명)와 놀아주는 것도 일과다.'큰소리'는 진천부터 안심까지 지하철역 이름을 모두 왼다. 하루종일 누워서만 지내는 상환(14)이는 허씨가 나타나면 금방 웃는 모습으로 반겨준다. 나이에 비해 체격이 너무 작아 다섯 살 짜리 만하다. "처음에는 너무 힘들었어요. 밥 먹이는 것도, 안아주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더라구요. 어떤 아이는 음식을 삼키는 것조차 힘겨워하고 우유만 먹으면 토하기도 했죠".

처음 허씨가 봉사를 시작했을 때 '당신 애들이나 잘 돌보라'며 안쓰럽게 생각하던 이웃들도 이제는 도와주고 격려해줘 힘이 난다. 그러나 아직까지 허씨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이 있다. 나눔공동체에는 국고보조금이 전혀 없다. 법인 설립에 필요한 건물이나 자산이 없는 탓이다. 독지가들의 후원금만으로 또다른 한 곳의 15명과 어렵게 어렵게 이끌어 나가고 있다.

박운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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