푹신한 가죽 등받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회전의자, 스치듯 던진 말에도 허리를 90°각도로 굽히는 머리 희끗한 임원들, 술을 진탕 마신 다음 날엔 오전 내내 느긋하게 잠을 자도 무방한 사람, 월급날에 구애받지 않고 사고 싶은 물건을 선뜻 살 수 있는 사람…. 월급쟁이 김형극(46)씨 눈에 비친 이 땅의 사장님들은 그런 모습이었다.
김형극씨는 자칭 착한 아들이었고 얌전한 학생이었다. 군 시절엔 눈치빠른 졸병이었고 사회에선 골프부킹 잘하는 '능력있는' 부하직원이었다. 그렇게 국내 최고 재벌그룹 총무과장까지 승승장구로 올랐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김씨에게 직장은 '지옥'이었다.
"어디에도 내 인생이 없는 것 같았어요. 늘 남들 골프부킹이나 대신하고 자질구레한 서류작성이나 하는 사람으로 살아야 할 것 같았다고요". 김씨는 적어도 오후 7시30분에는 퇴근할 수 있는 직장을 갖고 싶었다.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었고 가족들과 같이 저녁밥을 먹고 싶었다. 그래서 여러 차례 계열사를 옮아 다녔지만 일은 늘 넘쳤다. 저녁에 시작한 회의는 밤 12시를 넘기기 일쑤였다. 소주잔을 앞에 두고 '허허' 웃었지만 동료들은 서로를 적으로 몰아세웠다. 치열한 경쟁 때문이었다김씨는 월급쟁이를 그만두고 사장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1995년, 그의 나이 마흔 살이 되던 해였다.
"막상 회사를 그만두니 할 일이 없었어요". 김씨는 6개월 동안 빈둥빈둥 놀았다. 하루 종일 쉬지 않고 일하던 사람에게 할 일 없는 6개월은 휴식이 아니라 지겨움의 정수였다. 그래서 덜컥 사업을 벌였다. 구두 세탁소.
역시 '용감한 놈은 대개 무식하다'라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는 2년간의 바동거림 끝에 보기 좋게 주저앉았다.
"창업을 할 땐 모르는 일에 뛰어들면 안됩니다. 또 '박리다매'든 '폭리소매'든 어느 한 쪽은 확실한 사업이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만의 아이템을 개발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는 한번의 실패로 대단한 전략가가 된 듯 했다.
사업실패 후 그는 암중모색에 들어갔다. 단무지 배달로 연명하면서 자기에게 맞는 아이템을 찾아 나섰던 것. 1년이상 연구를 거듭하던 김씨는 다시 새로운 사업에 도전했다. 다행히 실직자를 위한 창업자금 대출을 쉽게 받을 수 있던 시절이었다.이번에는 장사가 아니라 발명이었다. 각고의 노력끝에 개발한 '저온 농축 홍삼 엑기스 추출기'. 기존 '습식 홍삼 농축액 제조기'의 단점을 면밀히 분석한 후 이를 보완한 발명품이었다. 현재 그가 개발한 홍삼 농축액 제조법은 특허심사 중이다. '홍삼 제조 가열용기'는 이미 실용신안을 받았다.
김씨는 현재 '홍삼 제조기' 발명 성공으로 월수입이 1천만원을 웃돈다. 그러나 그는 아직 연구할 만한 신제품이 많이 남았다고 했다. 기왕 사장이 된 이상 아무래도 월수입 1천만원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모양이다.
"사장이 되고싶다면, 일단 도전해야 합니다. 실패해도 성공할 수 있습니다. 실패는 하되 좌절하지 않으면 됩니다". 김씨는 자신도 약 30건의 특허를 신청했고 그 중 대부분은 '엉터리' 판정을 받았다는 후일담을 털어놓았다.
조두진기자 earf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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