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대사 휴정(休靜)은 '웅장하나 수려함은 떨어진다(壯而不秀)'라고 표현했다지만 지리산은 배달민족의 영산(靈山)으로 꼽는데는 이론이 없을성 싶다. 우리나라 남부지방을 동서로 나누는 소백산맥의 끝머리에 솟구친 높이 1천915m의 산. 대한민국 국립공원 제1호다. 경상남도 함양.하동.산청군, 전라북도 남원군, 전라남도 구례군 등 3도 5군에 걸쳐 둘레가 자그마치 800여리. 옛적부터 금강산, 한라산과 함께 삼신산(三神山)이라고 했다.
▲최근세에 들어서는 좌우대결로 그 아름다운 능선과 계곡이 피로 물들어진, '민족의 한'이 서린 곳이기도 하다. 1949년부터 5년간에 걸쳐 1만717회의 교전으로 2만여명의 군경, 빨치산 등이 스러져 갔다. '남부군'을 쓴 이태(李泰)는 '이제 이름조차 기억하는 이 없는 그 주검들은 폭우 속에 흙이 되었으나 그들이 불태웠던 허망의 정열에는 한가닥 장승곡도 없었다. 사랑도, 미움도, 환희도, 분노도, 마침내 모든 것이 투명으로 돌아간 역사의 강물위로 인간은 또 흘러간다'며 조금은 감상에 젖은 회상을 했다. 그러나 현실은 같은 민족끼리 총부리를 겨눈 무력 제압과 무력 투쟁이 교차한 한국 현대사에서 대표적인 비극의 한 현장으로 볼수 있다.
▲좌우 대립 당시 죽어간 원혼을 달래려는 '생명 평화 민족화해 지리산 위령제'가 또다른 좌우 대립을 보였다고 한다. 군경유가족 및 빨치산 50여명은 서로 눈인사조차 나누지 않아 서먹한 분위기는 행사가 끝나도록 계속되었다고 하니 감정의 골 깊이를 재확인 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전쟁 당시 이곳에서 공식적인 희생자로 확인된 5천여명의 위패가 승무의 춤사위속에 태워져 하늘로 날아 갔지만 살아 남은 자들의 미움과 분노가 그대로 남아 '화해와 평화의 새 시대'를 만들기에는 아무래도 역부족임을 절감케 한다.
▲50년간 쌓인 갈등을 하루아침에 풀기는 어려운 일일 것이다. 가족이 총살당하고, 죽은 사람의 뼈도 추스르지 못하는 등의 아픔을 어느 한시라도 잊을 수 있을 것인가. 어두운 흙속에 묻힌 서성이는 혼령을 떠올리면 마음속의 호곡(號哭)을 어느 누구도 그치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도, 아프고 아픈자들을 위한 모임은 만나는 그 자체만으로도 용서와 사랑의 다리를 놓는 일이 아닌가. 사랑도, 미움도, 분노도, 흘러가는 일인 것을.
최종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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