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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지 않은 국군포로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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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희를 맞은 정형외과 의사 박진홍(朴震洪)씨. '6.25'를 이틀 앞둔 칠순 노의사의 눈물은 아직도마를줄 모른다. 51년전 학도병으로 지원 입대, 중공군에 포로로 붙잡혀 북녘땅 국군포로수용소를 전전하며 흘렸던 그 눈물. 그것은 차라리 '국군포로들에게 과연 조국은 무엇이었느냐'고 묻는 피맺힌 외침이다.

박씨는 길고도 처절했던 전장을 가로지르는 33개월간의 포로생활을 '돌아온 패자'(역사비평사)란 책으로 엮어냈다. 그것은 전쟁에 대한 한 개인사에 불과하지만, 한국전쟁사의 한모퉁이를 채워줄 귀중한 자료이자 육필증언임에 틀림없다.

1950년 11월 27일 새벽 3시경, 그는 평안남도 덕천의 한 고지에서 중공군 병사의 총살집행 직전 살아났다. 그때 나이 열아홉. 대구의과대학(경북대 의대 전신) 예과 1학년생이었다. 국군포로가 된 박씨는 그후 화풍 광산과 벽동 포로수용소.평양 포로관리총국.승호리 강동 제8포로수용소.뻥골과 천마 포로수용소 등 북한 전역의 포로수용소를 전전하다가 1953년 8월17일에 포로교환됐다.

판문점에서 애국가를 연주하는 군악대 앞에서 팬티차림으로 선 포로들은 3년만에 마음껏 울어본 감격도 잠시, 인천항 화물선(LST)에 몸을 실은 포로들의 운명을 엉뚱한데로 향하고 있었다. 남해의 외딴 섬 용추도. "그토록 그리던 조국의 품이 한산도 남쪽 섬의 인민군 포로수용소라니.... 기약없는 포로수용소 생활이 다시 시작되고 '빨갱이 사상검증'이 벌어졌습니다". 불안과 회한을 이기지 못한 동료들이 집단자살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용추도 포로수용소에 대한 이같은 증언도 박씨가 처음이다.

7사단 의무대대에 원대복귀한 그가 만기제대를 한 것은 1954년 5월 1일. 파란만장한 군대생활을 마치고 돌아오니 대구는 전쟁을 잊어버린지 오래였다. "더욱 견디기 어려운 것은 나같은 사람을 바보취급하고 국군포로들을 냉대하는 사회 분위기였습니다. 내가 정말 어리석었다는 생각도 들었지요. 이제 누가 조국의 제단에 몸을 던질지...'.

입학한지 10년만에 졸업하는 기록을 세우고 의사의 삶을 살아 온 그는 올 6월에도 경북대 의대 교정 한켠에 있는 '6.25 참전 전물 학우추모비'를 찾았다. 산 자도 죽은 자도 말이없는 그곳. 차가운 비석을 적시는 노병의 눈물과 탄식도 이제 영원한 망각 속에 잠길 날이 멀지 않았다.

조향래기자 swordjo@imaeil.com

조향래기자 swordj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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