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길거리 옷장수 배환철씨

대구시 달서구의 한 아파트 밀집촌, 인도 한 켠에 좌판을 길쭉하게 펼쳐놓고 청바지와 티셔츠를 파는 40대 남자, 웅크린 어깨에 모자까지 푹 눌러 쓴 배환철(45)씨. 올해로 6년째 거리 옷장수 노릇을 하고 있다.

배환철씨가 오늘 잡은 자리는 이른바 '명당'이다. 눈앞에 은행이 있어 왕래하는 사람은 많고, 떠나라고 고함치는 상점 주인은 없다. 은행 앞이 무엇보다 좋은 점은 바로 화장실. 언제든 출입이 가능한 깨끗한 화장실이 눈앞에 있다는 것은 노점상에게는 엄청난 행운. 공공 화장실이 턱없이 부족한 대구에서 노점상이 하루를 버티는 일은 만만치가 않다. 그래서 노점상들은 차에 페트병 한 두개씩은 꼭 챙겨 둔다. 급할 땐 차안에서 용무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배씨는 아침 7시면 노점을 펼 자리에 도착한다. 사람들이 북적대는 시장이나 은행 근처에 자리를 잡자면 아침 7시는 결코 이르지 않다. 대단지 아파트 앞은 빛 좋은 개살구다. 사람 출입은 드물고 자동차만 쉴새없이 들락거릴뿐이다. 운수 나쁜 날엔 어렵게 좋은 자리를 잡고도 단속에 쫓겨 떠나야 한다. 더욱 운수 나쁜 날엔 물건을 압수 당하고 되찾자면 벌금을 내야 한다.

한때는 배씨도 잘 나가는 완구공장의 사장이었다. 그러나 7,8년 전 갑자기 근로자의 임금 인상 열풍이 불면서 맥없이 주저앉고 말았다.

"순전히 저임금 노동력에 의존하던 산업이었거든요. 요즘은 값싼 중국산이 한국을 완전히 점령해버렸어요" 배씨는 완구회사 도산 후 식당을 열었다가 실패하고 결국 옷장수로 나섰다. 그의 아내도 거리에서 옷을 판다. 두 부부의 월수입은 대략 200만원에서 250만원. 부부의 소원은 10평 짜리 내 옷가게를 갖는 것.

거리 옷장수 배씨에게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매서운 겨울날씨와 단속. 온종일 거리에서 바람을 맞아야 하니 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 감기가 떨어질 날이 없다. 아직 겨울은 멀찌감치 서 있는 데 그는 벌써 코맹맹이 소리를 하고 있다. 게다가 추운 날엔 손님마저 뜸해 더욱 맥이 빠진다.

"교통 흐름에 방해가 되지 않는 곳, 주민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곳에도 단속이 심해요".

그는 무슨 국제 대회나 행사를 앞두면 단속이 더욱 잦아 어디에도 갈곳이 없다고 푸념을 늘어놓는다. 외국 손님들 눈에는 노점상이 그렇게 흉칙한 모습이냐고 되묻는다.

"백화점에서 물건 사는 사람도 있고 노점에서 물건을 사는 사람도 있어요. 어려운 사람들끼리 살 수 있도록 배려해주면 좋겠어요". 티셔츠도 5천원, 청바지도 5천원…. 저렴한 가격 탓일까 그의 노점엔 주부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가 1t 봉고에 싣고 다니는 옷은 약 1천점, 잘 팔릴 때는 1주일에 한번씩 서울에서 물건을 떼 온다. 안 팔리면 한 달에 한번 서울 가기도 힘들다.

아들, 딸 두 아이 모두 착하다는 배환철씨. 그는 오늘도 1t 봉고에 청바지와 티셔츠, 그리고 내 가게의 꿈을 싣고 달린다.

조두진기자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